프리드리히 니체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독일어: 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년 10월 15일 ~ 1900년 8월 25일)는 독일의 문헌학자이자 철학자이다. 서구의 전통을 깨고 새로운 가치를 세우고자 했기 때문에 ‘망치를 든 철학자’라는 별명이 있다. 그는 그리스도교 도덕과 합리주의의 기원을 밝히려는 작업에 매진하였고, 이성적인 것들은 실제로는 비이성과 광기로부터 기원했다고 주장했다.
관념론과 기독교는, 세계를 두 개로 구분짓는다. 이를테면 기독교는 이승 이외에도 하늘나라가 있다고 가르친다. 또한 플라톤은 세계를 현상계와 이데아계로 이분한다. 니체는 이러한 구분에 반대하며 ‘대지에서의 삶을 사랑할 것’을 주창하였다. 또한 현실에서의 삶을 비방하는 자들을 가리켜 퇴락한 인간이라 부르며 비판하였다. 이렇듯, ‘영원한 세계’나 ‘절대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니체는 관념론적 형이상학에 반대한다. 니체는 기독교 신자들이 예수의 가르침과 달리, 안 믿으면 지옥 간다는 멸망적 교리만을 전했다며 기독교를 비판했다
니체는 전체주의, 민족주의, 국가주의, 반유대주의 등을 비판했다. 그러나 그의 사상이 파시스트들에게 왜곡되기도 했다. 진리의 가치를 묻는 그의 질문은 해석상의 문제를 제기했다.
출생
니체는 1844년 10월 15일 예전의 프로이센 (독일)의 작센 지방의 작은 마을인 뢰켄(Röcken)에서 루터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이름은 프러시아의 왕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에게서 빌려온 것으로, 빌헬름 4세는 니체가 태어나던 날에 나이가 49세를 넘어있었다(니체는 훗날 그의 이름에서 가운데에 있던 “빌헬름”을 빼 버렸다. 니체의 아버지인 카를 빌헬름 루트비히 니체(1813-1849)는 루터교회 목사이자 전직 교사이었고, 프란치스카 욀러(1826~1897)와 1843년에 결혼하였다. 그의 여동생인 엘리자베스 니체는 1846년에 태어났고, 뒤를 이어 남동생인 루드비히 요셉이 1848년에 태어났다. 니체의 아버지는 뇌 질환으로 1849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어린 남동생은 1850년에 죽었다. 그 후 가족은 나움부르크로 이사를 갔고, 그곳에서 니체의 할머니와 어머니 프란치스카, 아버지의 결혼하지 않은 두 자매, 두 하녀들과 함께 살며 어린시절을 보냈다. 니체의 할머니가 1856년에 세상을 하직하자, 가족은 그들의 집으로 이사했다.
퇴직
1879년 이후 건강상의 악화와 자유로운 철학의 정립을 위해 35세에 바젤대학교를 퇴직하고,조용히 산 속으로 들어가 요양과 집필에 전념했다.
독립 철학자 생활 (1879–1888)과 죽음
35세에 바젤 대학교에서 퇴직한 이후 그는 강연도 그만두고, 병든 몸이 적응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유럽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집필생활에 몰두하였다. 1881년, 프랑스가 튀니지를 점령했을 때, 튀니지로 여행하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이내 그 계획을 접고 만다.(건강에 대한 문제로 여행을 취소한 것으로 보인다.)1889년 1월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졸도한 후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생애의 마지막 10년을 보냈다. 니체는 정신병 발작을 일으킨 후 완전히 정신 상실자가 되었고, 이때부터 어머니와 함께 예나에서 거주했다. 어머니가 죽자 누이동생 엘리자베트가 니체를 바이마르로 옮겼고, 니체는 1900년 8월 25일 바이마르에서 죽었다. 니체가 죽자 엘리자베트는 고향 뢰켄의 아버지 묘 옆에 니체를 안장했다.
니체 정신병의 원인
니체는 말년에 정신적인 붕괴를 겪고 10년 동안 제정신을 회복하지 못한 채 살다가 죽었다. 그의 정신 착란, 치매는 매독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니체가 매독에 걸렸다는 설을 반박하는 문서들은 다음과 같다.
* 《니체의 정신병: 세기의 오진인가?》 – 저자; 정신 분석학자 Eva Cybulska
* 《니체가 매독에 걸렸다는 도시전설》- 저자; 신경과학자 Richard SchainGreenwood , Greenwood Press 2001 (Contributions in Medical Studies, vol. 46)
참고
Nietzsche’s complete statement is:
“God is dead. God remains dead. And we have killed him. How shall we comfort ourselves, the murderers of all murderers? What was holiest and mightiest of all that the world has yet owned has bled to death under our knives: who will wipe this blood off us? What water is there for us to clean ourselves? What festivals of atonement, what sacred games shall we have to invent? Is not the greatness of this deed too great for us? Must we ourselves not become gods simply to appear worthy of it?”
The phrase first appeared in Nietzsche’s 1882 collection The Gay(Joy) Science (Die fröhliche Wissenschaft, also translated as “The Joyful Pursuit of Knowledge and Understanding”). However, it is most famously associated with Nietzsche’s Thus Spoke Zarathustra (Also sprach Zarathustra), which is most responsible for making the phrase popular. Other philosophers had previously discussed the concept, including Philipp Mainländer and 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From Encyclopa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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