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가 남겨졌다

 <나희덕 시인>

구두가 남겨졌다

그는 가고
그가 남기고 간
또 하나의
육체,

삶은 어차피
낡은 가죽 냄새
같은 게 나지
않던가

씹을 수도 없이
질긴 것,

그러다가도
홀연 구두
한 컬레로
남는

그가
구두를 끌고
다닌 게 아니라

구두가
여기까지
그를 이끌고
온 게 아니었을까

구두가 멈춘
그 자리에서

그의 생도
문득 걸음을
멈추었으니

얼마나 많이
걸었던지
납작해진
뒷굽,

어느 한쪽은
유독 닳아

그의 몸 마지막엔
심하게 기우뚱
거렸을
것이다

밑 모를
우물 속에
던져진 돌이
바닥에 가 닿는
소리

생이
끝나는
순간에야 듣고
소스라쳤을지도
모른다

노고는 길고
회오의 순간은
짧다

고래 뱃속에서
마악 토해져
나온 듯한

구두 한 컬레,

그 속에는
그의 발이 연주하던
생의 냄새
같은 게

그를
품고 있던
어둠 같은 게

온기처럼 한 웅큼
남겨져 있다
날아간다.

-나희덕-

나희덕
1966년 충남 논산 출생.
연세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 박사.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나는 나무가 되고 구름 되어》
시집 《뿌리에게》외 다수.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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