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손

아내의 손

아내와 아주
오랜 세월을 함께 지낸 뒤에
비로소 알게 된 것은 그녀가 출중한 비기
(祕技)를 숨기고 사는 무림의
고수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아내는
그녀의 놀라운 무공(武功)을
좀처럼 남들에게 잘 드러내
지 않는다.오히려 심약하고 겁이 많은
사람으로 그녀를 위장할
때가 더 많다.

아무래도
한 이불을 쓰며 지낸 세월이
20년이 넘다보니 남편인 나는
아내의 비밀스러운 절정의
공력을 모를 리 없다.

그저
신비스럽고 놀라운 것은
자신의 출중한 비기(祕技)를
숨기고 사는데도 아내의 주변에
늘 사람들이
넘친다.

아내에게 밥을 사고
선물을 주고 집으로 초대하는
사람들이 많다.그런 여자를 아내로 뒀다는
사실 하나로 나는 만족해야 하지만
그녀의 놀라운 공력만은
여전히 부럽다.

군복무를 마치고
대학으로 돌아왔을 때 나
는 얼마간 방황했다. 나와 세상 사이의
간극을 발견했고 그 거리를
좁힐지 말지를 두고
고민이 깊었다.

후배와의 연애마저
지리 멸렬해져 삶의 즐거움 모두를
잃어버린 상태였다. 술도 담배도 가까이 하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주로 배낭을
등에 짊어진 채 먼지방의 소도시를
찾아다니며 길 위를 걷고
또 걷는 방법으로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곤 했다.

어느 여름방학,
오랜 배낭 여행을 마치고
검게 그을린 얼굴에 수척한 모습을 하고
서울로 돌아왔을 때 학교에서 날 보면 늘
형이라고 불렀던 여자 후배 하나가
나를 카페로 불러냈다.

이전에도 나는 이날의
기억에 대해 글로 쓴 적이 있지만
그 여자 후배가 다짜고짜 내게
이런 말을 해와서
당혹스러웠던
경험이 있다.

“형! …제가…..잠시.. 형의 손을  잡아
줘도 될까요?”

제법 수줍음이 많았던
나였는데 나는 그만 여자 후배에게
바로 내 손을 내주고 말았다.

그리고 그날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나와 그후배의 손은 한동안
그렇게 서로 포개어져 있었다.

그 시간이 얼 마였는지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나 분명한 것은
두 손이 포개어져 있는 동안에 내 마음 속에
가득했던 안개들이 말끔히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며칠전 밤,
깊이 잠든 아내를 보면서 나는
살며시 아내의 손에 내 손을 내밀었다.
잠결 인데도 내 손이 닿자 아내의 손이
그날처럼 내 손을 살며시 잡았다.

마음 속의 이런저런
피로와 막연했던 불안들이
역시나 봄날 눈녹듯이 내 마음 속에서
물러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대학시절 카페에서 아내가 내게
살며시 꺼내보인 비기(祕技)는 그녀가 사용
할 수 있는 공력의 절정이었을 것이다.

단번의 무공으로
내가 그녀의 영원한 포로가
된 것을 보면 그것은
자명하다.

특히 살면서
매번 드는 생각이지만
내가 아는 아내의 성격으로 볼 때
그날 카페에서 아내가 내게 했던
말과 행동은 아마도 아내의 삶 전체에서
단 한 번 펼쳐보인 극강의
필살기였으리라
짐작한다.

그래서
상대가 나였음이
참으로 다행이고
또 다행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글/김감독 DP-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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