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전신주(電信柱)>
현대적 고층 빌딩 가득한 뉴욕시라 하지만
외각 주택가를 지나다 보면 아직까지도
오래전에 세워진 나무 전신주가 많습니다.
그 전신주를 가만히 보면 오랜 시간 풍상을
견뎌온 흔적이 나무 기둥의 터진 살 곳곳에
가득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무는 전기 공급과 통신이 절실한 사람들
에 의해 베어지면서 초록을 만들어 가지와
잎을 자라게 하는 나무로서의 삶을 마감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뽑고 잘라내
마음대로 길 위에 세운 그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살아야 하는 숙명을 가졌습니다.
요즘 우리들은 할 수만 있다면 내가 원하
는 삶을 살려 하고 행여 누가 그 욕망을
막아서면 상대가 친족이어도 보복을 서슴
치 않습니다. 연일 이어지는 끔찍한 뉴스
만 살펴봐도 사람이 가장 무섭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얼마 전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으러 뉴욕
브롱스의 한 레스토랑을 찾아가는 길에
사진 속의 오래된 통나무 전신주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나무 전신주의 제
얼굴 높이엔 사진처럼 스테이플이 빽빽
히 박혀 있었습니다.아마도 각종 광고지
나 전단지가 붙어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아마도 사람들은 오랜 세월, 그 몸뚱이에
가득했을 각종 광고지엔 주목했겠지만 늘
같은 모습으로 서 있는 전신주는 무심히
보고 지나쳤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개 우린 늘 같은 곳에 같은 모습으로
있는 대상에겐 세심한 관심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날 저는 세월 속에 모두 사라지
고 없는 광고지들 대신에 온몸으로 그 아
팠을 흔적들을 껴안고 처연히 서 있는 나무
전신주에 마음이 갔습니다.
사람의 끝 없는 욕망 때문에 찢기고 잘리
고 못이 박혀서도 처연히 서서 그 자리를
지키며 존재하는 아주 끔찍한 나무의 운명
이 제 마음을 붙들었습니다. 제가 아는 주
변의 그 누구도 자신의 삶을 망가뜨린 대상
의 필요를 따라 헌신적으로 살지 않습니다.
한낱 나무 전신주에 대해 뭐 그리 생각이
많은가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와
가족을 건사하는 일도 힘겨워 남의 어려
움을 돌아보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
그걸 ‘한낱 전신주’ 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그 전신주 때문에 뉴욕의 밤이 밝혀지고
겨울밤의 한기를 따뜻히 덥힐 수 있으며
지친 하루를 보냈을 사람들의 아늑한 밤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밤길, 차창 밖 세상은
도시의 야경으로 눈부셨습니다. 그 야경
에 가려 마저 보이지 않는 어둠, 그 속
어딘가에는 촘촘한 줄로 서로의 어깨를
묶어 의지한 채 서 있는 나무 전신주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세상
여기저기엔 사람들에게 잘 보이지 않으나
어둠 속에서도 스스로 빛나는 그런 따뜻한
불빛이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우리에게
도 그런 빛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글/ 김감독 DP-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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