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잃어가고 있는가

무엇을 잃어가고 있는가

남편의 고등학교 동창
A씨는 안경점에서 일한다.
남편과 나는 둘 다 눈이 좋지 않은 탓에,
가끔 그 안경점을 이용하는 데,
이 번 주말에도 그동안처럼
대수롭지 않게 방문한 것이었다.

실은 난 최근 갑자기 눈이
안 좋아졌다고 느끼고 있었다.
한 일 주일, 이 주일 정도 되었는데,
자기 전에 책을 읽으면 잘 안보였다.
안경을 끼고도 길이 뿌옇게 보이곤 했다.

내 시력검사는
생각보다 아주 오래 걸렸다.
A씨는 한 참을 갸웃거리며
내게 잘 보이지 않는지 물었다.
나는 잘 보이지 않는다고 답했다.

“ 제수씨, 음, 안경 맞추시기 전에
병원을 다녀오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도수를 높여도, 낮춰도
잘 안 보이시는 걸 보니,
교정이 안 되고 있는 것 같아요.
흔하진 않은데..“

그래서 병원에 가게 된 것이었다.
안과에는 어림 잡아보아도
서른 명은 족히 되는
인원으로 시끌벅적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의료진만 해도
열 댓 명이상은 되어보였다.
다른 무언가로 분주해서, 정신이 없었다.

나는 속으로
‘안과가 참 희소한가보구나,
안과를 하면 잘 될 것 같은데.‘ 라는
일상적인 생각을 할 만큼
솔직히 진지하지 않았다.

의사가 여러 가지
도구를 이용해서
내 눈을 관찰 하더니,
왼쪽 시력이 갑자기
두 배 이상 나빠진 것과,
뿌옇게 보이는 게 이상하다고 말했다.
무언가가 시력을 막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CT 검사를 했다.
망막에는 이상이 없었다.
이 후에도 두세 가지의 검사를 더 했다.
처음으로 머리에 집게 같은 것도 꼽고,
시신경 전이도 검사도 했는데,
참 묘한 기분이 들었다.

마지막 검사 땐,
서른 명은 족히 넘어보였던
대기실이 아닌,
수술실과 붙어 있는 검사실에
나 혼자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너무 고요해서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

결과적으론
다행히 눈에도, 시신경에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의사는 ‘다행’이라고 표현했다.
다행이면 좋다는 뜻이겠지.

하지만, 의사는 원인을 알 수 없고,
이런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일주일 뒤에 다시 방문하라고 했다.

병원을 나와서 나는
갑자기 배가 고팠다.
점심을 먹었는데도,
갑자기 무언가 입에
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에서 붕어빵을 사서,
어린 아이처럼 먹으며
회사로 돌아갔다.

돌아가며 생각했다.
만약 내가 눈이 아프다면
그 이유는 뭘까?
이유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고,
오래 생각할 것도 없다.
‘잠을 늦게 자는 것’ 때문일 것이다.

실로 나는 항상은 아니지만,
대부분 세 시간에서 네 시간만 잤다.
엄마한테 욕먹을 까봐 말은 안했지만,
그 보다 덜 자고 회사로
나간적도 많았다.

그래도 최근엔
잘 안보일 때도 있고,
집중도 잘 안되고,
눈도 많이 피곤해서
또 너무 팍팍하게
살지 말자라는 생각에,

아니면 약간의
회의감이 들어서
적정 수면시간을 지키기 시작했는데,
이런 일이 생긴 것이었다.

나는 내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왜 그렇게 했어?
졸렸잖아.

뭔가 보상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까지 할 이유가 있었어?’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내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
노력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이대로 매일 매일을 그냥 살면,
그냥 이대로 이 정도의
사람이 될 것 같아서.

지금은 내가
가치가 없는 것 같아서.
뭐라도 되면, 뭐라도 더 잘하게 되고,
뛰어난 무언가가 생기면
그래도 가치 있는 인간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나는 잠을 줄였다.
회사는 다녀야 하고,
노력도 해야 하고,
나로선 최선의 선택이었는데.

어쩌면 그 선택으로 인해,
나는 앞으로 왼쪽 눈이
교정이 안 될 수도 있다.

나는 이게 대단한 일인가 싶다가도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인다.
실은 난 늘 그랬듯 지금 내게 닥친 상황을
이해하는 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생각해보니 나는
결혼한 후부터,
뭔가를 혼자서, 내 삶에 대해서,
내 인생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다.
장기적인 목표도, 결심도 없이
그냥 하루를 살아내는 데 급했다.

결혼 후부터 내 삶은,
내 이해도와 관계없이
끊임없는 주입식 교육을
해대고 있으니까.
끝없는 퀘스트를 주고 있으니까.
어렵고 못하는 일만
많아지고 있으니까.

단 며칠 만
혼자 생각하고 싶다.
지금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인지에 대해.

그 어떤 책임도 없는 곳에서 혼자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내가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아도,
과연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가에 대해.

나는 도대체 왜 나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가에 대해

도대체 뭐가
되려고 했던 것인지에 대해.

지금은 선명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흐릿해진다.
무슨 이상을 가지고
노력했었는지도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시력만 잃은 게 아닌가보다.

웃긴 게, 난 주말 전까지만 해도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는데,
‘왼쪽 시력이 안 좋다는 말’을 들은 이후부터,
불편해지고 이 모든 걸 잃어간다.

꼭 말에 힘이 있는 것처럼
말 때문에 내가 안 보이는 것처럼

-글/날며-

<결혼일기 中>

좋은글 감사합니다
http://www.loaloachristiannetwo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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