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사랑하는 방법
“너무 한 것 같아.
날 사랑하긴 해?
앞으로도 계속 이럴 거지?
그럴 거면, 지금 말해.
나도 널 ‘조금만’ 사랑 할 테니“
그는 마음먹은 대로
언제든 크기를 바꿀 수 있는 건,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며
나는 본인을 말로만 사랑한다고
쏘아대며 푸념하지만,
내가
어쩌다 너를 잊고,
문득 너를 잊고,
뜻밖에 너를 잊고,
의외로 너를 잊을 만큼,
네 안에 살고 있음을,
너는 모른다.
–
밤새 흐트러진 머리는
내가 가장 먼저 정돈 해주려고,
회사에서 지고 온 그늘은
내가 항상 걷어 주려고,
누구보다 네 이름을
가장 많이 부르고,
네 눈가에
생긴 얄미운 주름은
내가 가장 먼저
안쓰러워 해 주려고,
네게 꼭
맞아야만 하는
비가 있다면,
망설임 없이
기꺼이 뛰쳐나가
함께 맞아주려고
너와 결혼했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연애 때보다
지금 함께하는 시간이 더 짧다.
–
‘언제 꼭 같이 와야지!’ 라며
행복한 상상을 했던 식당에서
식사 한 번 하기 쉽지 않고,
함께 보려고
미뤄온 영화는 끝끝내,
막을 내리고 만다.
아닌 게 아니라,
눈 감은 모습만 보는
사이가 되어버렸으니,
어쩔 땐 숨 쉬는 로봇 같다.
그도 그렇겠지?
가족이 많은 덕에
그가 없는 집에서
혼자 있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다행히도 늘 안심되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간혹, 아주 가끔
그만이 채워줄 수 있는
공허한 공기가 느껴질 때면,
내 삶에 원래 없었던 양
사라져버린 네 흔적이
그리워 질 때면,
그럴 때면,
차라리 그를
조금만 사랑해야겠다고,
나를 위해 그러겠다고 다짐한다.
–
어쩌면,
조금 덜 사랑하는 것은
어쩌면, 쉬운 일이다.
그가 없는 공간이 쓸쓸하다면,
‘아! 처음으로
내 방이 생겼다고 생각하자,
그리고 예쁘게 꾸며볼까?‘
생각하고,
늘 새벽에 퇴근 하는 너를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괴롭게 느껴진다면,
내 혼을 쏙 빼놓을 만큼
재미있는 일들을
찾아 또 푹 빠지면 된다.
‘나는 널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저 내 일을 하고 있는 것 뿐‘ 이니까.
그러다 난처하게도,
사무치게 사랑받고 싶은,
꼭 안기고 싶은 충동이 느껴질 땐,
아이를 꼭 안아본다.
너를 닮은 꽉 차는 따듯함과,
새근새근 늘 고마운 숨결을 느끼면서
그렇게 너를 조금만 사랑하는 방법을
하나 둘 터득해 간다.
–
그리고
신데렐라의
열두시 시계추가 울리듯
일 끝난 내게 전화가 오면
너를 조금만 사랑하기 위해
외웠던 모든 주문들은
마법처럼 풀려서,
다시 너를 느끼는 요즘.
모르겠니.
내가 조금만
사랑하는 방식은 이런 거야.
내가 널 적당히 사랑하는
방식은 이런 거야.
문득 너를 잊고,
어쩌다 너를 잊고,
간혹 너를 잊고,
뜻밖에 너를 잊고,
의외로 너를 잊는 내가,
그런 게 가능할 리가.
-글/날며-
날며의 결혼일기 中-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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