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여름의 기억>
뉴스를 보니 한국은 장마 이후 이어지고 있는
무더위 때문에 폭염경보가 내려지고 열대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뉴욕도 습도가 높지는 않지만 며칠 계속되고
있는 폭염으로 길 위의 사람들 대개 지친 표정
이다.어느덧 계절은 7월 후반의 한여름이다.
초등학교 시절,우리집엔 부모님 슬하에 4남1녀
의 5남매가 살았다.모두 2년 터울이었는데 형님
아래에 누님 그리고 나,마지막으로 쌍둥이 남동
생이 둘이었다. 당시 우리집엔 모두 4개의 방이
있었다.그러나 어머님은 빠듯한 살림으로 우리
의 과외비나 피아노 교습비 등을 충당하시려고
방 하나를 세놓으셨다.
그래서 우리 5남매의 여름은 매년 끔찍했다.
사실 널따라 마루가 있었지만 셋방 사람이 화장
실을 이용하려면 마루를 거쳐야 했기에 여름밤
그 시원한 마루에 자리를 펼 수도 없었다.그렇
게 우린 좁은 방에 더운 몸을 다닥다닥 붙이고
선풍기 하나에 의지해 무더위와 싸워야 했다.
“우리집엔 너무 식구가 많아!”
어머니 말씀대로라면 나는 어려서부터 까탈
스러운 아들이었다.그 까탈스러운 아들은 늘상
북적이는 남매들 때문에 집에 오면 도무지 조용
한 시간이 없다며 자주 푸념을 늘어놓았다.동네
엔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어른들도 몇분 계셨다.
특히 결혼한지 얼마 되지않는 새댁들은 한참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산아
제한 캠페인을 들으며 성장한 세대라 어머니에
게 아이가 다섯이라는 소릴 들으면 입을 쫙 벌리
고 일부러 더 놀란 표정을 짓곤 했다.
하지만 우리 어머니에게 다섯 남매는 삶의 목적
이자 이유였던 것 같다.한여름 아침마다 밥상을
차리시고 5남매의 학교 도시락을 싸시는 동안
이마에 송글송슬 땀이 맺혔지만 짜증 한 번
내시는 일이 없었다.학교 갈 준비를 하며 슬쩍
부엌 풍경을 보면 아침을 준비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은 마치 여러 개의 접시를 공중 위로 던졌다
멋지게 받아내는 묘기를 펼쳐내는 곡예사와 같
았다. 그렇게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반찬 수가
적지 않은 아침상을 차리셨고 자녀들의 머리수
만큼 많은 도시락을 뚝딱 만들었다.그런 어머니
는 너무 식구가 많다 푸념하며 혼잣말을 하는
아들에게 다음과 같이 되묻곤 하셨다.
“식구가 너무 많다면 넌 우리집에서 누가 없었
으면 좋겠니?”
역시나 난 대답할 수가 없었다.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남매는 세상에 나타난 처음부터 다섯이었
고 이건 다섯이 되어야만 우리 남매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어머니의 생각은 늘 현명했다.
그러나 난 여전히 다섯으로 북적대는 집이 힘들
었다.그러던 어느 여름날에 우리 동네 지역에
공급되던 수도물이 오랜 가뭄으로 끊기는 일이
발생한다.
단수가 이뤄지고 3일 정도 지났을 뿐인데 동네
주민들은 곧 대 참사를 경험한다.당시는 슈퍼
에서 물을 사먹던 시절도 아닌지라 마실 물을
쉬이 구할 방법도 딱히 없었고 한여름 무더위
에 샤워는 커녕 이 닦을 물도 없었다.나머지 상
황은 다들 미루어 짐작해주길 바란다.^^
결국 구청에서 동네마다 급수차를 보내 물을
나눠주기 시작했다.그래서 미리 예고된 시간에
급수차가 도착하면 동네 주민들은 물을 퍼담을
수 있는 양동이나 커다란 대야 등을 들고 동네
인근 공터로 모여들었다.모두 일렬로 서서 자기
순서를 기다려야 했는데 그 모습이 나름 장관이
었다.동네 사람들 모두가 한자리에 모이는 경험
도 흥미롭지만 그들이 얼마 만큼의 물을 챙겨가
는지를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그리고 무엇보다
급수차가 나타나면 우리 5남매가 현장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다.다들 부러운 시선으로 어머니를
쳐다봤다.아무래도 갖 결혼한 새댁들의 부러움은
더 컸다.남편도 없이 혼자서 양팔에 물이 가득한
양동이를 들고 집으로 끙끙거리며 옮겼으니 말
이다.나는 기억한다.그 때마다 어머니는 천군
만마를 거느린 장수처럼 어깨를 쫙 펴시고 우리
5남매의 선두에서 의기양양하게 물을 받아가셨
다.우린 그런 멋진 어머니 뒤에서 우리 덩치만큼
커다란 물통과 양동이에 물을 가득 담아서
씩씩하게 발맞춰 집을 향해 걸었다.ㅋㅋㅋ
가족수가 많아 그 물도 늘상 넉넉하진 않았지만
우리 가족은 그렇게 한여름 동네에 식수가 끊기
는 위기의 시간을 놀라운 팀웍으로 그 누구보다
넉넉하고 시원하게 잘 해쳐나갔다.세상에서 가장
멋진 대장님 우리 어머니와 함께 말이다.그리고
나는 그 후로 우리 남매가,우리 가족이 시끌벅적
하게 많은 것에 대해서 더는 불평스러운 혼잣말
을 하지 않았다.그리고 많은 가족이 어느면 서로
를 힘들게 하기도 하지만 어려움이 닥쳤을 때는
가장 커다란 힘이 된다는 삶의 교훈을 얻는다.그
여름은 그렇게 내 기억 속에서 여전히 반짝인다.
-글/김감독 DP-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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