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나는 슬픔도 배불렀다


그날 나는 슬픔도 배불렀다

아래층에서
물 틀면 단수가 되는
좁은 계단을 올라야 하는
전세방에서

만학을 하는
나의 등록금을 위해

삭월세방으로
이사를 떠나는 형님네

달그락거리던 밥그릇들
베니어판으로 된 농짝을
리어커로 나르고

집안 형편을
적나라하게
까보이던 이삿짐

가슴이 한참
덜컹거리고 이사가 끝났다

형은 시장 골목에서
짜장면을 시켜주고

쉽게 정리될
살림살이를 정리하러 갔다

나는 전날 친구들과
깡소주를 마신 대가로

냉수 한대접으로
조갈증을 풀면서
짜장면을 앞에 놓고

이상한 중국집
젊은 부부를 보았다

바쁜 점심시간 맞춰
잠 자주는 아기를 고마워하며

젊은 부부는
밀가루,
그 연약한 반죽으로

튼튼한 미래를 꿈꾸듯
명랑하게 전화를 받고
서둘러 배달을 나아갔다

나는 그 모습이
눈물처럼 아름다워

물배가 부른데도
짜장면을 남기기 미안하여

마지막 면발까지
다 먹고나니

더부룩하게
배가 불렀다,
살아간다는 게

그날 나는 분명
슬픔도 배불렀다

-글/함민복-

좋은글 감사합니다
http://www.loaloachristiannetwork.com/
<Photo from app>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