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저녁이 있다
저물 무렵
무심히 어른거리는
개천의 물무늬에
하늘 한구석
뒤엉킨
하루살이 떼의
마지막 혼돈이며
어떤 날은
감히 그런 걸
바라보려
한다.
뜨거웠던 대지가
몸을 식히는
소리며
바람이
푸른빛으로
지나가는
소리며
둑방의 꽃들이
차마 입을 다무는
소리며
어떤 날은
감히 그런 걸
들으려
한다
어둠이
빛을 지우며
내게로 오는
동안
나무의
나이테를
내 속에도 둥글게
새겨 넣으며
가만 가만히
거기 서 있으려
한다
내 몸을
빠져나가지 못한
어둠 하나
옹이로
박힐 때까지
예전의 그 길,
이제는 끊어져
무성해진
수풀더미 앞에
하냥 서 있고
싶은
그런 저녁이 있다.
-나희덕-
나희덕
1966년 충남 논산 출생.
연세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 박사.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나는 나무가 되고 구름 되어》
시집 《뿌리에게》외 다수.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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