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소음
조용히 눈을 떠요.
눈을
뜰 때에는
조용히 뜹니다.
눈꺼풀이 하는 일은
소란스럽지
않아요.
물건들이
어렴풋한
덩어리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눈길로
오래 더듬으면
덩어리에 날이
생기죠.
나는
물건들과의
이러한 친교에
순응하는
편입니다.
벽에 붙은
선반에 대하여,
나에게
선반은 평평하지만
선반 입장에서는
필사의
직립(直立)이
아니겠습니까?
옆집에서는
담을 높이는
공사가 한창입니다.
점점 높아지는
담에 대하여,
시멘트가
채 마르기 전에
누군가 적어 놓는
이름에 대하여.
며칠째,
습한 날씨가
계속되고
투명한
문신 같은
이름이
피부에
내려앉습니다.
피부가
세상에 가장 먼저
나가는 마중이라면
나는
이 마중에
실패하는 기분이
듭니다.
나는
이 습기에
순응합니다.
하지만
만약 손에
닿지도 않은 컵이
미끄러진다면
컵을 믿겠습니까?
미끄러짐을
믿겠습니까?
유일한
목격자로서
이 비밀을 어떻게
옮겨 놓을 수
있을까요.
도대체
이 습기는
누구의 이름입니까.
눈꺼풀을 닫아도
닫아지지 않는
눈이
내가
사라지고도
내 곁을 지키는
잠이
오래 나를 지켜봅니다.
-이다희-
2017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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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 by Kang, Dong Seok 강동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