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꽃 지폐
무안군 성동리
170번지
임금례
할머니 집에
불이 났다
할아버지
돌아가신 후
양파밭일 온품 반품
바꾸어
모은
팔십오만 원
빳빳한
저고리
은빛 테두리
두른
단아한
신사임당 한 장씩
장판 밑에
깔아 놓고
늘어진 난닝구
고부라진 등골
부리고
누워도
손주들
학원비도 대주고
용돈도 쥐어
주며
율곡선생을
빌어주는
순간은
알싸한
파스 몇 장이면
무릎뼈 엉치뼈까지
다 시원해지는
것 같아
내일 또
어느 밭으로
갈까
노곤달근한 꿈이
깡그리 타버렸다
아침에
나가면서
끓여 먹었던 누룽지
양은냄비 불 끄는 걸
깜빡 잊어버렸던
탓이었다
흙 속에
거꾸로 머릴 박고
살아도
하늘 딛고
땅 속으로 알알차게
살찌우던 양파돈
생각에
연기 자욱한
집으로 뛰어 들어가
장판 먼저
걷어보고
까맣게 타버린
지폐를 발견하고는
기가 막히게 서럽고
허전하던 밤
마을회관에서
잠을 자야
했는데
동네 노인들
하나씩 하나씩
찾아와
성님
잊어부러야제
어쩌겠소
하며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양파 냄새나는
사임당 몇 잎씩 꺼내
쥐어 주고는
엉거주춤
펴지지도 않는
다릴 끌고
흰 달빛 속을
걸어 돌아가더라는
밤새
그러고선
다음날 또
새벽같이 날품 가는
경운기에
동글동글
모여 앉았더라는
흙먼지 날리는
길가에 하얀 양파꽃도
무리무리 환하게
피었더라는
-이선주-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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