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색 가방이 있던 역(驛)

갈색 가방이 있던 역(驛)

작업에
몰두하던
소년은

스크린도어 위의
시를 읽을 시간도
달려오는 열차를 피할
시간도 없었네

갈색
가방 속의
컵라면과
나무젓가락과
스텐수저

나는 절대
이렇게 말할 수 없으리
“아니, 고작 그게
전부야?”

읽다 만
소설책,
쓰다 만 편지
접다 만 종이학,
싸다 만 선물은
없었네.

나는 절대
이렇게 말할 수 없으리
“더 여유가 있었더라면 덜 위험한
일을 택했을지도.”

전지전능의
황금열쇠여,
어느 제복의
주머니에 숨어 있건
당장 모습을
나타내렴

나는 절대
이렇게 말할 수 없으리
“이것 봐. 멀쩡하잖아, 결국
자기 잘못이라니까.”

갈가리 찢긴
소년의 졸업장과 계약서가
도시의 온 건물을
화산재처럼
뒤덮네

나는 절대
이렇게 말할 수 없으리
“아무렴. 직업엔
귀천이 없지,
없고 말고.”

소년이여,
비좁고 차가운
암흑에서 얼른 빠져나오렴
너의 손은 문이 닫히기도 전에
홀로 적막했으니

나는 절대
이렇게 말할 수 없으리
“난 그를 향해 최대한 손을
뻗었다고.”

허튼 약속이
빼앗아 달아났던
너의 미래를 다시 찾을
수만 있다면

나는 절대
이렇게 말할 수 없으리
“아마, 여기엔 이제 머리를
긁적이며 수줍게 웃는
소년은 없다네.”

자,
스크린도어를
뒤로하고 어서 달려가렴
어머니와 아버지와
동생에게로 쌩쌩
달려가렴

누군가 제발
큰 소리로 “저런!” 하고
외쳐 주세요!

우리가
지옥문을
깨부수고 소년을
와락 끌어안을 수
있도록

-심보선-
(구의역을 기억하는 詩)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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