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발

 

아버지의 발

아버지는 힘이 셌다. 열 두살에 엄마를 잃고 상여를 따라가다 논두렁을 안고 구르며 울 때부터 힘이 세졌다고 한다. 지게를 일찍 배운 탓에 몸은 지게를 닮아갔다. 작고 탄탄한 지게로 집 채 만한 나뭇짐을 지고 거뜬히 일어서던 아버지. 엄마 없는 설움, 홀로서야 하는 마음의 공허가 아버지를 헤라클래스 같은 힘을 갖게 했을 것이다.

몇 해 후, 어린누이의 출가로 더 힘이 세어진 아버지는 꽃 같은 열 여덟 동갑내기 처녀를 아내로 데려왔다. 아버지의 힘은 자꾸 세졌다. 한 가정의 힘이란 세면 셀수록 신이 난다. 점점 재미를 붙인 두 사람은 힘을 합쳐 풀잎보다 여린 힘들을 일곱이나 생산하여 더 보태었다. 그즈음 아버지는 뿔이 잘 생긴 소도 한 마리 부렸다. 날마다 여물을 풍성히 썰어 콩깍지며 고구마줄기, 허투루한 청둥호박 등을 척척 베어 넣고 쇠죽을 거나하게 끓여 소를 먹였다. 아침저녁 쇠빗으로 등짝을 윤이 나게 긁어주면 소는 아버지허리에 목덜미를 문댔다. 지긋이 감았다 떴다, 큰 눈이 거무럭거무럭 둘의 대화는 정겨웠다.

하여, 아버지는 수 천 평의 논밭을 이루었다. 지게에서 리어카 경운기 콤바인 트랙터의 시대를 따라 세상사는 힘을 불리는 동안, 손가락 두 개를 한마디씩 잃어 남몰래 앓이를 많이 했었다. 그럴수록 아버지 힘은 더 세어지는지 벼 수백 가마니를 혼자 휘뜩휘뜩 창고에 쟁이며 알통을 과시했다.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그럴듯한 가문의 볼모로 잡혀있던 나는 불평과 불만을 터트리며 아버지를 들이받았지만 그때마다 나가 떨어졌다. 그러고는 아버지의 힘이란 저리 걷잡을 수 없는 것인가 보다고, 무연히 따를 밖에 없었다.

점차 억세어져 가는 풀잎들에게 힘이 부쳐가던 어느 해. 특수작물이 보탬이 된다는 말에 농법을 바꾸어 멀칭 이랑을 만들 때였다. 경운기로 논을 갈고 로터리를 쳐서 흙을 부드럽게 만들고 이랑을 지어야 했다. 규격상품을 생산하려면 기계만으로는 불가능한 작업이었다. 작물에 맞는 이랑너비를 정확하게 표시해 두고 소를 부렸다. 소는 아버지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경운기 트랙터에 노동의 영역을 넘겨 너무 오랫동안 교신을 하지 않아서인지, 수신안테나에 녹이 슬었을까? 아님, 암호문을 더러 까먹었을까? 암튼 소는 아버지가 보내는 신호를 오독하는 것이었다.

‘이랴 자랴~ 좌로 좌로~우로우로~이랴이랴~’ 아버지는 고삐를 능주다 채뜨리다 찰싹거렸다. 하지만 감각적이고 미세하게 움직여야 할 곳에서는 소가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듯했다. 먹고 놀기를 거듭하여 살이 디룩디룩 오른 만큼 힘도 넘쳐나서 그런지, 어르고 달래고, 몇 번이나 뺑뺑이를 쳤으나 번번이 그 지점을 벗어났다. ‘고랑 쪼깨 내는 것도 하기가 싫어서?’ 소가 어깃장을 놓는다고, 화가 난 아버지머리에는 쇠뿔이 솟는 것 같았다.
마침내 소도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아버지를 향해 뿔을 들이댔다. 아버지는 억이 막혀 처음에는 뒤로 물러서면서 호통을 쳤으나 소가 코로 화통을 불면서 눈에 부리부리 불을 켜고는 아버지한테로 달려들었다. 아버지는 맨손으로 쇠뿔을 잡고 맞섰다. 관객 한 사람 없는 투우장처럼, 바싹 가문 이른 봄, 흙먼지가 회오리 기둥바람을 일으키는 목마른 논바닥에서 소는 아버지를 들이받고 아버지는 뿔을 잡고 싸우고 있었다. 마침 이웃 논에서 목격했기에 망정이지, 그들이 달려와 주지 않았던들 그때, 아버지는 마지막 힘이 꺾였을 것이다. 갈비뼈 두 대에 금이 가고 온 몸의 멍을 삭히느라 근 달포를 앓아누웠었다. 그래도 아버지의 힘은 좀체 줄어들지 않았다.

이순을 넘기고 귀가 부드러워진 덕인지 도포에 유건차림으로 ‘향교’로 ‘산천재’로 축문, 헌관을 올리며 주춤 주춤 힘을 재우는 듯했으나 혈식군자의 피가 그대로인 제물을 많이 드신 탓인지 마음만은 여전했다. 이제는 운동 삼아 하는 일재미가 붙었다고, 그래도 힘은 여전하다고 무거운 볏가마를 보란 듯이 해깝게 들던 어느 날, 체증 같은 것이 아버지 힘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처음엔 대수롭잖게 여겼다. 급기야 병원에 입원하여 병마와 힘겨루기가 시작되었는데 아버지는 꼭 이길 자신이 있다면서 절망하는 우리 눈빛들을 안심시켰다.

병은 세를 불려가며 아버지 힘을 앗아가느라 애를 썼다. 아버지도 굽힐 줄을 몰랐다. 투병은 서너 달을 넘겼다. 아무래도 대적의 위세에 점점 밀려가고 있는 그늘을 보셨던 것일까. 아버지는 병마와의 힘겨루기를 몰래 적은 일기를 침대 시트 밑 감추었다. 사불여의 할 때를 대비하여 당신의 힘을 영원히 보관할 장소도 상세히 그려두셨던 것이다. 아마 거긴 어떤 병마도 침범할 수 없는 아버지만의 성역일 것이었다.

입동추위가 서리바람 치는 날, 아버지는 극심한 통증에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마지막 승부를 겨루는 듯 했다. 예전의 그 싸움소가 천 마리 만 마리로 아버지에게 달려드는 것 같았다. 뒹굴며 마지막 절규를 포효하시며 몸부림하셨다. 아버지 힘에 가장 많이 반기를 들었던 나는 ‘간호사’를 외치며 모르핀을 불렀다. 그것이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효라 생각했다. 아아~아버지 제발 그만, 그만 하세요. 나는 울면서 뒷걸음 쳤다. 간호사를 강제로 데려와서 기어이 모르핀으로 한번 더 병마를 찌르게 하고 말았다. 노랗게 이우는 콩꽃 같은 어머니가 요동치는 아버지 다리를 붙잡았고, 칡꽃 같이 파리한 언니가 쓰러지는 아버지를 꼬옥 보듬어 안았다.

이윽고, 보채다 잠드는 아이처럼 아버지는 조용히 승리자의 평온한 모습으로 눈 감으셨다. 저만큼에서 떨고 있던 나는 그때서야 다가가 아버지 발을 가만히 만졌다. 아버지의 발, 삶의 원천이 느껴졌다. 힘, 발이 흙을 딛고 섰을 때 이 세상 무엇과도 맞설 수 있는 힘이 솟아올랐으리라. 한평생 흙에 서서 살은 아버지.

그런데…. 아아, 그랬다. 흙을 딛지 못하고 침대에 누운 날부터 아버지의 힘은 급격히 줄다 끝내는 놓아버린 것이다. 병이라는 녀석, 아버지 힘의 원천을 알고 있었단 말인가. 흙에 접지되어 있어야 하는 발바닥이 허공에 떠서 방황하고 있을 때 힘은 수증기처럼 빠져나간 것이다. 아버지에게는 흙이 모르핀인 것을. 아버지에게 나는 왜 흙을 딛게 하지 못했을까?

수천 년 사람이 딛고 다닌 황톳길처럼 야무고 단단한 아버지의 발바닥을 만지며 시려오는 발등에 얼굴을 내려놓았다. ‘아버지~.’캄캄한 눈물이 흘렀다. 아버지는 잠시 젖은 엄지발가락 하나를 서너 번 흔들어 보이고는 조용히 놓으셨다. 마치 여리고 약한 나에게 자신과의 힘겨루기에서 이기라는 묵언처럼.

-이고운-
<백번째 그리움>중에서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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