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언어
-아직도 이승에 머물러 있는 이 날,
눕지 못하는 넋들을 추모하며-
햇빛 찬란한 날은 찬란한대로
흐려 비바람소리 가득하면 가득한대로
아직 이승에 머물러 있는 이 날
과거의 페이지로 넘기지 못하는 역사
조용한 평화 속에
민주주의를 외치던 그 날
이유도 모른 채
군화와 총칼 속에 잠들어간
수백 주검과 수천 부상과 행방불명
그 통한과 오열의 끝은 어디쯤일까!
언제쯤일까!
해마다 5월이면
정의와 자유를 지키려고
온갖 고문 속에 항거했으면서도
살아남은 자의 치욕이라는 죄책감 속에
소리할 수도 없는 또 다른 그들
맨정신으로는 살육할 수 없어
상관의 명령으로 마신 소주탓에
마비된 의식으로
그 잔혹사를 함께 쓰게 만들었다던
스물 갓 넘겼을 7공수여단 부대원들
그날 그 현장 속에 갇혀
세월은 한 발짝도 흐르지 못한 채
반복되는 핏빛 악몽과 환청으로 살아간다던
그 현장 속 일반시민들
갈래갈래 흩어진 총탄 파편을
어찌할 수 없어 파편과 동거를
택했다던 어느 분의 증언
그 속에서
어떠한 진보도 흐름도 멈춘 채
정체전선으로만 40년을
머무를 수밖에 없던 역사
뒤집힌 역사 바로 볼 눈 떴다면
국립 5.18 민주묘지 앞에서만 참배하지 말고
작고 낮아 볼품없는 비석 뒤 비문을 보라
네 살짜리도, 임산부도, 여고생도,
중학생도, 대학생도 갖가지 사연으로
서 있는 비문을 보라
40년간 풍화로 희미해졌을 비문
눕지 못하고 서서
40년을 바람으로 떠도는 이유가
아직도 형형하게 눈 뜬 채
진정한 인정과 참회를
기다리고 있어서일 게다.
제대로 선 5월의 역사를 기다리고
있어서일 게다.
영원한 불구가 된 채 비틀거리는
절름발이 역사일 줄 알았는데
5월의 장미향이 영원한 피비린내로
기록될 것 같았는데
머잖아 바로 잡히는 그 날
비로소 편히 누워 승천할
장미향 품은 혼(魂)들의 노래
5월의 노래, 5월의 언어
2020. 5. 18.
글을 쓴 이유 : 어느 해 5월,
지인과 함께 5.18 망월동 묘지에 갔다가
비석 뒤 낡고 흐린 비문을 보았습니다.
그 누구도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던 비문
갖가지 사연으로 선 채 푸르게 눈 떠 있어
도저히 이끼가 낄 수 없던 키 낮은 비문들……
그들의 넋이 조금이라도 위로받기를
기도하면서 이 글을 써 봅니다.
-정해란-
좋은시詩 감사합니다
http://www.loaloachristiannetwo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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