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색 가방이 있던 역(驛)

갈색 가방이 있던 역(驛)

작업에
몰두하던
소년은

스크린도어 위의
시를 읽을 시간도
달려오는 열차를 피할
시간도  없었네

갈색
가방 속의
컵라면과
나무젓가락과
스텐수저

나는 절대
이렇게 말할 수 없으리
“아니, 고작 그게
전부야?”

읽다 만
소설책,
쓰다 만 편지
접다 만 종이학,
싸다 만 선물은
없었네.

나는 절대
이렇게 말할 수 없으리
“더 여유가 있었더라면 덜 위험한
일을 택했을지도.”

전지전능의
황금열쇠여,
어느 제복의
주머니에 숨어 있건
당장 모습을
나타내렴

나는 절대
이렇게 말할 수 없으리
“이것 봐. 멀쩡하잖아, 결국
자기 잘못이라니까.”

갈가리 찢긴
소년의 졸업장과 계약서가
도시의 온 건물을
화산재처럼
뒤덮네

나는 절대
이렇게 말할 수 없으리
“아무렴. 직업엔
귀천이 없지,
없고 말고.”

소년이여,
비좁고 차가운
암흑에서 얼른 빠져나오렴
너의 손은 문이 닫히기도 전에
홀로 적막했으니

나는 절대
이렇게 말할 수 없으리
“난 그를 향해 최대한 손을
뻗었다고.”

허튼 약속이
빼앗아 달아났던
너의 미래를 다시 찾을
수만 있다면

나는 절대
이렇게 말할 수 없으리
“아마, 여기엔 이제 머리를
긁적이며 수줍게 웃는
소년은 없다네.”

자,
스크린도어를
뒤로하고 어서 달려가렴
어머니와 아버지와
동생에게로 쌩쌩
달려가렴

누군가 제발
큰 소리로 “저런!” 하고
외쳐 주세요!

우리가
지옥문을
깨부수고 소년을
와락 끌어안을 수
있도록

-심보선-
(구의역을 기억하는 詩)

*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 사고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 사고
(九宜驛-死亡事故)는 2016년 5월 28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내선순환
승강장에서 스크린도어를 혼자 수리하던
외주 업체 직원 김 아무개(1997년생,
향년 19세)가 출발하던
전동열차에 치어
사망한 사고이다.

구의역에서 숨진
비정규직 수리공은 월급을
144만원만 받으며 컵라면도
못 먹을 정도로 중노동에
시달렸지만,

서울메트로
출신 전적자들은
손쉬운 일만 맡으면서도
400만원 안팎의
고임금을
받았다.

이 사고의 여파로
2016년 6월 5일, 서울메트로
임원급 및 팀장급 이상 간부 등
총 약 180여 명이 사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메트로는
팀장급 이상 간부 전원의
사표를 받아놓고

사고 책임 여부에 따라,
또 혁신안 마련에 소극적일 때도
사표를 수리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서울메트로는
6일 경영지원본부장과
기술본부장 등 임원 2명의
사표를 수리하고, 스크린도어
업무에 책임이 있는 설비 처장,

전자사업소장, 승강장
스크린도어 관리팀장과
사고 당시 구의역 현장을 관리한
구의역장, 구의역 담당 직원 등
총 5명을 직위 해제했다고 밝혔다.

이 사고에 대해 서울메트로를
담당하고 있는 서울시의 총책임자인
박원순 서울시장은 무조건 책임을 지고
사과의 뜻을 밝혔다.

좋은시詩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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