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년
1월 13일자
‘르 프티 주르날’ 에
실린 앙리 메예의
드레퓌스 군적 박탈식
(1월 5일)
드레퓌스 사건
19세기
프랑스에서
유태인 드레퓌스의
무고한 체포로
촉발된
찬반 논란
드레퓌스 사건
(프랑스어: L’affaire Dreyfus,
영어: Drefus Affair)은
19세기 후반의 수년 동안
프랑스를 휩쓸었던
반유대주의와
이 때문에
희생된 무고한
드레퓌스의 무죄
여부를 놓고
로마 가톨릭교회와
군부 등 보수 세력과
진보 세력이 격돌했던
사건이다.
에밀 졸라
(Emile Zola)를
비롯한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한
드레퓌스파들에 반하여
드레퓌스의 유죄를 주장했던
반드레퓌스파들은
조직적인
반대운동을
벌이기 위하여
‘프랑스 조국 연맹’
(Ligue de la Patrie Française)을
결성하였다.
프랑스 학술원
(Académie française)의
가톨릭 회원들은 이 단체에
일괄적으로
가입했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적극적인 반드레퓌스
운동은
결국
드레퓌스의 무죄로
끝나며
프랑스의
정교분리 원칙인
라이시테 원칙을
수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더 나아가
드레퓌스 지지파들의
이념과 전략들은
포르투갈과
스페인 그리고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
반교권주의 운동의
모델이 되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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