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윤리
일제 강점기에
윤동주 시인님이
옥에서 별을 헤며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침묵의 허기, 내면의
격렬한 숨죽임으로
하나하나 부를때
우리 마음에
파동을 일으키는
물결이 가슴 가득한
물기로 고이는
것을
몇년전
상영된 영화를 보며
우리는 함께
느꼈다.
그 것이
참 시詩라 생각하며
정갈한 마음으로
그 문앞에
감히 얼굴을
들지도 못하고
경건히 서있던
선조들과 시인들은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요즘 SNS 에서
시인이라 칭하는
소수의 사람들에게서
가끔 느끼는
것은
그들이
시詩의 세계가
마치 부적절한
남녀관계를
정당화
할 수 있는
언어의 세계로
포장 하려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내나 남편이
병이 깊어 수십년
식물인간으로 살아 온
사람의 배우자라면
그 절박한
아픔과 외로움을
인간으로서 충분히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남편이 버젓이
건강하게 옆에있고
성장한 자녀들을
둔
아내이자
어머니이자
사회인으로서,
또는
남편이자
아버지이자
사회인으로서
“더듬다”
“핥다”등의
부적절하고
선정적인 단어들로
추파를 던지며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경험이
필요하다고
하니
무슨 경험을
말하는 것인지
참으로 언어도단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한동안
썩은 암덩어리
같은
한 시인과
그 주위에서
격렬한 아픔의
숨죽임으로
고통을 받던
여류 작가들을
보았다.
대한민국에
‘간통죄’라는 법이
없어졌다는
것은
더 이상
우리 시민들이
가축이나 야만인 처럼
국가가 우리의 프라이버시를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는
선진적인 발상에서
온 것이다.
그 것은
도덕과 윤리를
거스르며
배우지에게
정서적 피해와
감성적 상처를
주라는 것이 아님을
먼저 식별해야 되겠다.
국민은
정치계나 법계
그리고 학교나
공공기관들이
투명하고
정직하고 성실히
그들의 업무에
임하길
원한다.
그리고
사회는 그 안에서
서로 믿음으로
평안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시인들의 시도
사회 한편에서
대한민국
국민들과 함께
투명하고 아름답게
피어나야
할 것이다.
-글/유지호-
좋은글 감사합니다
http://www.loaloachristiannetwo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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