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겨울나무

그해 겨울나무

1

그해 겨울은 창백했다

사람들은
위기의 어깨를 졸이고
혹은 죽음을 앓기도 하고
온몸 흔들며
아니라고
하고

다시는
이제 다시는
그 푸른 꿈은
돌아오지 않는다고도
했다.

팔락이던 이파리도
새들도 노래소리도
순식간에 떠나
보냈다.

잿빛 하늘에선
까마귀떼가 체포조처럼
낙하하고

지친 육신에
가차없는 포승줄이
감기었다.

그해 겨울,
나의 시작은
나의 패배였다.

2

후회는 없었다
가면 갈수록 부끄러움뿐
다 떨궈주고 모두
발가벗은

빚남도
수치도 아닌 몰골 그대로
칼바람 앞에 세워져
있었다.

언 땅에 눈이 내렸다.
숨막히게 쌓이는 눈송이마저
남은 가지를 따닥따닥
분지르고

악다문 비명이
하얗게 골짜기를 울렸다.
아무 말도 아무말도
필요 없었다.

절대적이던
남의 것은 무너져 내렸고
그것은 정해진 추락이었다.

몸뚱이만 깃대로 서서
처절한 눈동자로 자신을 직시하며
낡은 건 떨치고 산 것을 보듬어
살리고 있었다.

땅은
그대로
모순투성이

뿌리는
강인한 목숨으로
변함없는
뿌리일

여전한 것은
춥고 서러운 사람들이
산다는
것은

살아
움직이며
빛살 틔우는
투쟁이었다.

3

이 겨울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말할 수
없었다.

죽음 같은
자기 비판을 앓고 난
수척한 얼굴들은

아무데도
아무데도
의지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마디를 긁히며
나이테를 늘리며 부리는
빨갛게 언 손을
세워 들고

오직
핏속으로
뼛속으로 차오르는
푸르름만이

그 겨울의 신념이었다.

한점
욕망의 벌레가
내려와 허리 묶은
동아줄을
기어들고

마침내
겨울나무는
애착의 띠를 뜯어
쿨럭이며
불태웠다.

살점 에이는
밤바람이 몰아쳤고

그 겨울 내내
모두들 말이 없었지만


긴 침묵이
새로운 탄생의
첫발임을 귿게 믿고
있었다.

그해 겨울,

나의 패배는
참된 시작이었다.

-시詩/박노해 시인-

좋은시詩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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