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향수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석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1927년>


Please, Click
<M+C. Voice>to view
above at the Menu Bar.

 

 

【정지용(鄭芝溶)시인】

1903년 충청북도 옥천 출생
1918년 휘문 고보 재학 중 박팔양 등과 함께 동인지 『요람』 발간.
1929년 교토 도시샤(同志社) 대학 영문과 졸업
1930년 문학 동인지 『시문학』 동인
1933년 『가톨릭 청년』 편집 고문, 문학 친목 단체 『구인회』 결성
1939년 『문장』지 추천 위원으로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김종한, 
이한직, 박남수 추천
1945년 이화 여자 대학교 교수
1946년 조선 문학가 동맹 중앙 집행 위원 
1950년 납북
시집 : 『정지용 시집』(1935), 『백록담』(1941),
『지용 시선』(1946), 
『정지용 전집』(1988)

*절제된 언어의 구사는 정지용의 시에서 일관되는 특성이지만
그의 시세계가 그리는 궤적은 몇 단계의 변모 과정을 보인다.
정지용 시의 전개 과정을 크게 세 단계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

첫째 1923년경부터 1933년경까지의 서정적이며 감각적인 시,
둘째, 1933년 [불사조] 이후 1935년경까지의 카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하는 종교적인 시,
셋째,[옥류동](1937), [구성동](1928) 이후 1941년에 이르는 동양적인
정신의 시 등이 그것이다.

특히 주목을 요하는 것은 정지용의 종교시가 [카톨릭 청년](1933)의
창간과 관련되어 있으며 이 지면에 대부분 그의 종교시가
발표되었다는 점이다.

초기의 감각적인 시와 후기의 고전적인 시들의 교량적인 역할을
종교시가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지용의 신앙시는 1934년 [카톨릭 청년]에
발표된 [다른 하늘], [또 하나의 다른 태양] 이후 자취를 감추며
4년여의 침묵 뒤에 [옥류동], [비로봉], [구성동] 등이 발표된다.

정지용의 대표작으로서 국민들에게 널리 애송되는
작품 한 편을 들라고 한다면,
우리는 [향수]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지용의 [향수]를 노래하는 사람 모두가
언제나 마음의 고향으로 되돌아감을 느낀다.
정지용은 [향수]에서 독특한 감각적 표현을 율격 언어로 응축시켜 한국인들이
마음의 고향에 도달하는 심정적 통로를 열어 보였다.
[향수]가 그려내는 고향의 정경은 누구에게나 있었음직한 추억이며 따라서
강력한 정서적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정서적 호소력에
힘을 더하는 것은
뛰어난 감각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금빛 게으른 울음’이나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전설의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에서 보이는 언어적 환기 효과는 당시로서는 특별한 예이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 표현한 [향수]는
뛰어난 감각적 표현으로 온 국민의 사랑 받아

첫째 연의 고향에 대한 공간적 환기와
둘째 연의 전형적인 농가의 풍경에서 제시되는 육친애의 그리움에 이어
셋째 연에서는 화자의 구체적인 성장 경험이 표현된다.

흙에서 자란 마음과 파란 하늘 사이의 화자의 행동 모습은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가 생겨나기 이전의 것으로서
유년 시절의 낙원에 대한 믿음을 연상시킨다.
그 정경은 어린 시절의 단순한 반추가 아니라 어린 시절의 이상과 낙원이
괴리되어 떠도는 현재의 상황을 시사한다. 넷째 연은 다시 구체적인 삶의
정경으로 돌아가고 다섯째 연은 계절의 순환과 더불어
포착된 고향집이 그려진다.

고향집이 내포하는 평화롭고 정겨운 감각으로
인해 가난의 어려움마저 넘어서고 있다.
[향수]는 20년대 초반의 젊은이가 고향을 떠나와
고향을 그리는 젊음이 용해되어 있으며, 오늘의 우리들 또한
상실한 낙원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생의 근원에 대한
동경을 담고 있다. 농경 사회에서 산업 사회로, 그리고 이를 넘어
정보화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의 한국인들에게 [향수]는
생의 근원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을 일깨워 준다

– 최동호 / 1948년생, 시인, 고려대 국문과 교수-


-좋은시詩, 해설 감사합니다-
‪http://www.loaloachristiannetwork.com/‬
<Photo from app>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