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고독은
욕되지 않으다
견디는 이의
값진
영광.

겨울의 숲으로
오니
그렇게 요조(窈窕)턴
빛깔도
설레이던
몸짓들도

깡그리
거두어 간
기술사(奇術師)의
모자(帽子).

앙상한 공허만
이
먼 한천(寒天) 끝까지
잇닿아 있어

차라리
마음 고독한 자의
거닐기에
좋아라.

진실로 참되고
옳음이
 죽어지고
숨어야 하는

이 계절엔
나의 뜨거운 노래는
여기 언 땅에
깊이 묻으리.

아아,
나의 이름은
나의 노래.
목숨보다
귀하고 높은 것.

마침내
비굴한 목숨은
눈을 에이고,

땅바닥 옥엔
무쇠 연자를
돌릴지라도

나의 노래는
비도(非道)를
치레하기에
앗기지는
않으리.

들어 보라.
이 거짓의 거리에서
숨결쳐 오는
뭇 구호와
빈 찬양의 헛한
울림을.

모두가
영혼을 팔아
예복을 입고
소리 맞춰 목청
뽑을지라도

여기 진실은
고독히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시詩 유치환-

유치환
(1908-1967)

호 청마(靑馬).
경남 통영 출생. 
유치진의 동생으로
통영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도일하여 도요야마[豊山]
중학에서 4년간 수학하고
귀국하여 동래고보(東萊高普)를 졸업,
연희전문 문과에 입학하였으나
1년 만에 중퇴하였다.

정지용(鄭芝溶)의 시에서
감동을 받아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40년에는
일제의 압제를 피하여
만주로 이주, 그 곳에서의 각박한 체험을
읊은 시 《수(首)》 《절도(絶島)》 등을
계속 발표하였다.

이 무렵의
작품들을 수록한 것이
제2시집 《생명의 서(書)》이다.

8·15광복 후에는
고향에 돌아와서
교편을 잡는 한편 시작을 계속,
1948년 제3시집 《울릉도》,
1949년 제4시집 《청령일기》를
간행하였고,

6·25전쟁 때는
종군문인으로 참가하여
당시의 체험을 《보병과 더불어》라는
종군시집으로 펴냈다.

그 후에도 계속
교육과 시작을 병행,
중·고교 교장으로 재직하면서
통산 14권에 달하는 시집과
수상록을 간행하였다.

그의 시는
도도하고 웅혼하며
격조 높은 시심(詩心)을 거침 없이
읊은 데에 특징이 있는데,

이는 자칫 생경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어떤 기교보다도 더 절실한
감동을 준다.

-출처 : nie-group | 글쓴이 : 비비추 –

좋은시詩,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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