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관심 그리고 사랑
관심과 사랑을 주고받는 사이에선 종종
아주 특별한 현상이 발생합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그렇고 사랑하는 연인들 사
이에서도 마술과 같은 일들이 일어나곤
합니다. 일반적인 관계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일이 발생합니다.
텔레파시 같은 것이 통해 서로의 마음을
알기도 하고 어떤 부모는 결혼한 자녀의
태몽을 대신 꿔주기도 합니다. 저보다 두
살 어린 제 쌍둥이 남동생은 어린시절 둘
이 붙어 자면서 잠꼬대로 대화를 나누기
도 했습니다.둘 사이는 여전히 각별합니다.
어떤 경우엔 아내가 임신을 했는데 남편
이 함께 입덧을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습
니다.
10여 년 전의 일입니다. 미국 동부의
한 지역에서 한국인 여성의 사체가 발견되
었습니다. 유명 대학에 재학중이었던 이
여성은 매일 아침 같은 코스를 뛰며 조깅을
했습니다. 그녀가 살해되었던 그날도 아침
일찍 조깅 복장을 하고 집을 나섰다가 변을
당한 것이었습니다.오래도록 일정한 시간
에 같은 코스를 달렸던 터라 그녀를 기억하
는 인근 주민들도 많았습니다.
경찰이 그녀를 살해한 범인에 대한 증거
확보에 실패하고 수사가 지지부진해지자
지역 주민들의 불안감이 나날이 커졌습
니다. 아무래도 누구나 피해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공포감 때문이었습니다.지역
언론사들도 합세해 경찰의 범인 검거를
독려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카메라를
들고 현장으로 달려가 그녀의 마지막 12
시간을 추적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사체가 처음 발견된 장소를 시작
으로 그녀가 매일 달렸다는 조깅 코스를
되밟는 촬영 일정이었습니다. 요즘처럼
무더운 여름이어서 촬영은 시작부터
힘겨웠습니다. 피해자의 사체가 발견된
곳엔 폴리스라인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그 인근에서 사고에 대한 의견을 말해줄
주민과 접촉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않았던 장소에서 전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피살된 그녀가 조깅을 했던 숲길 입구를 지
나치다 조그만 목장 하나를 보게 되었습니
다. 다섯 마리 정도의 말들이 풀밭에서 볏단
같은 것을 먹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
만 쪼그려 앉아 시름시름 앓고 있었습니다.
늘 서 있는 말들을 봐온 터라 그 모습이 제
겐 낯설었습니다. 때마침 목장을 관리하는
사람이 방송 촬영팀을 보고는 다가왔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경찰의 수사 경과에 대해
먼저 물었습니다.
“범인은 찾았답니까?”
“아뇨.경찰 수사엔 전혀 진척이 없습니다.
그런데 혹시 이번에 피살된 여성에 대해
좀 아시는 게 있나요?”
“네. 그럼요.그녀를 잘 압니다.”
그녀를 잘 안다고 말한 목장관리인은 대답을
하면서 풀밭에 주저앉아 시름시름 앓고 있는
말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녀는 조깅을 하면서 매번 저희 목장에
들렀어요. 그리고 주저앉아 있는 저 녀석
에게 당근을 가져다 먹이곤 했습니다.”
나는 순간, 그녀의 작은 배낭에서 발견된
유품이라며 경찰이 알려준 내용이 떠올랐
습니다. 플라스틱 생수병 하나와 당근 몇
개였는데 그게 목장의 말을 위한 것일 거
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그렇다
면 그녀는 사고 당일도 말에게 먹일 당근을
챙겨 이리 오던 길이었을 게 확실했습니다.
우리 방송팀은 목장 주인에게 마이크를 건
내면서 그날 있었던 일들에 대해 묻기 시작
했습니다.그런데 그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
줬습니다.
” 사실 풀밭에 앉아있는 저 녀석은 본래 몸
이 상당히 약한 말이었어요. 아마도 그래서
그녀가 녀석에게 각별한 관심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한 6개월 가까이 그녀가
매일 찾아와 당근을 건내고 쓰다듬으며
관심을 보여주니까 어느새 다른 말처럼 잘
걷고 뛰더라구요. 정말 신기했습니다.”
촬영을 이어가면서 난 그날 목장을 향해 뛰
고 있었을 피해자 생각을 했습니다.순간 마
음이 쓰려오면서 너무 안타까운 죽음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목장 관리인은 다시 하늘
을 한 번 쳐다보더니 말을 이어갔습니다.
“그런데…그날 참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저 녀석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겅중겅중
뛰더니 목장의 펜스를 넘어서려고 발작을
하지 뭐에요.그 때문에 제가 녀석을 진정시
키느라 아주 혼이 났었죠. 그런데 그녀가
바로 그날 누군가로부터 숲에서 피살되었
다는 소식을 듣고난 뒤에 그날 녀석의 행동
이 이해되었습니다. 저렇게 다시 주저앉은
이유도 알겠더라구요 ”
목장을 떠나와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저의
카메라는 다시 그녀가 피살되었던 현장을 담
았습니다. 바람이 제 얼굴에 닿았고 멀리서
아마도 그녀가 들었을지 모르는 말의 다급한
울부짖음도 들려왔습니다. 숙연했고 또 가슴
아팠습니다.
자신에게 관심과 사랑을 준 사람에 대한 짐승
의 마음도 저러한데 우린 과연 우리에게 관심
과 사랑을 준 사람들에게 같은 관심과 사랑을
표하며 살아가는지….그리고 그 사람의 아픔
에 대해 같이 아파하기도 하는지… 열심히 산
다 하면서도 생각처럼 잘 살지 못하는 저부터
부끄러움이 앞섰습니다.
우리가 줄 수 있는 관심과 사랑 그리고 우리가
받고 있는 관심과 사랑에 대해 잠시 생각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글/김감독 DP-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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