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사건
(Weekly History)
“1906년 11월 17일,
최익현 선생 사망”
일본 대마도에는 금빛 글자가 새겨진 비석이 있습니다. 비석에는 “대한인최익현선생순국비”라 쓰여있습니다.
조선 말 이름 높은 유학자이자 위정척사운동의 선봉에 섰던 면암 최익현 선생의 죽음을 애도하는 비입니다. 왜 최익현 선생은 이 땅이 아닌 일본 대마도에서 생을 마감했을까요?
최익현은 1876년 강화도 조약이 체결되자 도끼를 메고 광화문 앞에 나아가 반대 목소리를 높였고, 1905년 을사늑약 이후에는 공개적으로 의병을 모집하여 활동하였습니다.
최익현은 곧 관군에 붙잡혀 대마도로 유배를 가게 되었습니다. 대마도에 도착하자 대마도주는 최익현에게 일본식 단발을 요구하였는데, 최익현은 그에 대한 거부로 단식을 시작하였습니다.
일본의 온갖 회유와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단식을 이어갔는데 일본 관원이 억지로 입을 벌려 음식을 넣어도 씹지 않고 버틸 정도로 강경한 태도를 유지했습니다. 그의 기개에 놀란 대마도주가 사과하고 왕이 단식을 거둘 것을 명해 겨우 단식을 중단하였지만 후유증으로 음력 11월 17일 숨을 거두었습니다.
최익현의 강경한 의지와 기개는 당시 대마도의 명망있는 인사들을 감동시켰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최익현 선생을 기리는 제사를 올리며 선생의 유지를 지켰습니다.
대세가 이미 기울어 한 사람의 힘이 대세를 돌리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옳지 않은 것은 하지 않고, 자신의 온 힘을 다해 저항했던 한 사람의 생애가 대마도 사람들에게도 큰 울림을 주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을 그저 한 사람이 생을 다한 날이 아닌 역사적 사건이 있었던 날로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아닐런지요.
가져온 곳: 여행이야기
? 주말 잘 보내세요. ?
장 형배님
좋은글 감사합니다
http://www.loaloachristiannetwor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