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밥
-김 덕재-
팔순의 늙은 어머니,
김장독에서 김치 꺼내듯
가슴에서
돌 하나 꺼내셨다
이제는 오랜 친구되어버린 우울증을 데리고
위장도 없이 어머니는
이 먼 길을 헤쳐 와
밥을 짓지만
그 길목…
한번도 마중나간 적 없는 아들은
손님처럼 앉아
밥이 되기를 기다린다
신 김치를 송송 썰고 감자채를 칠 때마다
어머니는 묵묵히 그 가슴속 돌을 깎으셨지
그 모서리 조금씩 깎여나갈 때마다
아들은 늘 꺼이 꺼이 속으로만 울었다.
김치와 감자채를 감잣가루에 버무리면서
어머니는 막내아들이
세상과 이렇게 잘 비벼져서 살기를 바랐겠지만
여기저기 맘가는 대로 바람결에 흘러 온 나는
어머니 가슴속에 돌이 되어 들어앉아 버렸다.
세상 모든 어머니의 밥상 앞에선
세상 모든 자식이 다 평등해
기대와는 반대로 실패한 인생의 자식인 나도
한 그릇 밥 앞에서 시름을 잊는다.
생각해 보면 세상 어머니들은 다 똑같아
어머니는 인생에서 따뜻한 밥 한 그릇 내주기 위해
한여름 뜨거운 흙속의 감자알이 되셨고
김장철 배추가 되어
스스로 쓰라린 소금에 몸을 절이셨다.
나는 아직도 누군가에게
창가에 피는 한 송이 가녀린 국화꽃도
되어본 적 없거니와
남을 먹일 무논의 굵은
벼이삭이 돼 볼 생각은
해 본 적도 없는데
일평생 자식의 뒷마당만
쓸다 이제는 쓰다버린 몽당 빗자루 되신 어머니,
언제 다시 그 마른 가지에 꽃 피울 날 있어
꿈결처럼 참봄날에 꽃비 한번 원없이 내렸으면…
2006년 7월 22일,
돌아온지 몇 년만에
김치밥 한 그릇 놓인 저녁밥상 앞에 앉아
어쩌면 어머니의
이 김치밥,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문득 눈물이 괴고
목이 메이네
2010. 6. 30 –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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