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남편에게 부치는 마지막 편지

아내가 남편에게 부치는 마지막 편지

세상은 더 이상 울지 않고, 흔들리지도 않습니다.
모두 제자리를 찾아, 가고 왔습니다.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 사위는 고요했습니다.
너무 고요해서 제가 꿈속에서 운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당신이 떠난 줄 알지만 저는 자주 놀랍니다.
낮은 발소리에도 놀라고 낙엽 뒹구는
소리에도 놀랍니다.

저는 당신이 떠나지 않았음을 압니다.
죽음이 사람을 갈라놓을 수 없음도 압니다.

차가운 냉기 속에서도 당신의 체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당신의 미소를 볼 수 있습니다.
소쩍새마저 잠든 밤에는 당신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저는 붉고 큰 꽃이 되어 당신을 기다릴 것입니다.
처음 당신이 우리 집 담 너머에 핀 소화를 보고 저를 알아보셨듯,
이제 제 무덤에 핀 능소화를 보고 저인 줄 알아주세요.

우리는 만났고 헤어지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떠난 후에야 비로소 그리워지는 법입니다.
하물며 우리는 함께 있어도 그리워했는데
당신이 가시고 없으니 그리움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소문은 더 이상 담을 넘어 기웃거리지 못합니다.
제 울음소리도 더 이상 담을 넘지 않습니다.
아무도 제 울음소리를 들을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제 울음소리를 잊었지만
저는 울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당신 계신 그 먼 땅에도 봄이 왔습니까?
능청대던 수양버들 오간 데 없고 눈비만 어지러이 흩날립니다.
개울물은 더 이상 노래하지 않고, 바람에는
날카로운 쇠 비린내만 가득합니다.
다정했던 길은 멀기만 하고, 힘없는 제 몸뚱이는
비척비척 치맛자락을 밟습니다.

당신은 어디에 계시는지요?
가끔 안동 집에 들러 아이들 얼굴이라도 보시는지요?
아이들 꿈에라도 자주 오셔서 이야기를 나누시는지요?
제 꿈에 오시듯 아이들 꿈에도 오셔서 당신과
제 이야기를 들려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간밤에 눈이 소복이 내렸습니다. 장지문 안으로 들어온
산과 들은 하얘서 원근을 분간할 수 없습니다.
눈 내리는 밤은 왜 그다지도 조용할까요.
지난밤에는 바람소리마저 들리지 않더이다.
그렇게 고요하더니 아직 어스름한 새벽인데
세상은 희뿌옇게 밝아 있습니다.

당신이 좀 알려주세요. 이 찢어지는 고통을 어찌 달래야 할까요.
제가 어떻게 이 고통을 이기며 살아갈 수 있겠는지요.
대체 어째서 제가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요.
당신 잃고 원이 잃고 제가 어찌 하루라도 더 살 수 있겠는지요.
세상이 온통 허연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댑니다.
이 슬픔을 저는 어찌해야 할까요.

저는 우리의 운명을 거역할 것입니다.
오래전에 팔목수라는 말했습니다.
사람이 잊지 못할 추억은 없다고, 사람이 이기지 못할
슬픔은 없다고, 아물지 않을 상처따위는 없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남편 잃고 자식 잃은 슬픔을 잊을수 도, 이길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함께 거닐던 날들을 잊지 못합니다.

이제 능소화를 심어 하늘이 정한 사람의 운명을
거역하고 우리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립니다.
바람이 불어 봄꽃이 피고 진 다음,
다른 꽃들이 더 이상 피지 않을 때 능소화는
붉고 큰 꽃망울을 떠뜨려 당신을 기다릴 것입니다.
큰 나무와 작은 나무, 산짐승과 들짐승이 당신 눈을
가리더라도 금방 눈에 띌 큰 꽃을 피울 것입니다.
꽃 귀한 여름날 그 크고 붉은 꽃을 보시거든 저인 줄 알고 달려와주세요.

곡기를 끊었습니다. 사흘 동안은 물을 마셨지만
이제 물마저 끊었습니다. 이렇게 곡기와 물기를
끊어 저는 당신과 아이가 있는 곁으로 갈 작정입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났을 땐 눈앞이 흐릿했습니다.
이제 저는 낯익지만 모진 세상과 작별하고
정다운 사람들 곁으로 갑니다.

-글/원이 엄마-

병술년(1586년) 유월 초하룻날 아내가
– 원이엄마 편지 원문 / 안동대학교 박물관 소장 –

1998년 4월, 한국토지개발공사가 경상 북도 안동시 정상동 일대에 주택 단지를 조성하기 위해 묘지를 이장하던 중 1586년에 31세의 나이로 죽은
이응태(李應台)의 미라가 발견되었다.

그의 아내인 원이 엄마가 쓴 애절한 한글 편지가 미라의 가슴 위에 놓여 있었고, 그녀의 머리카락으로 삼은 미투리가 나왔다. 그런데 편지의 내용이 너무 안타깝고 두 사람의 깊은 사랑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어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또한 아내가 남편에 대해 ‘자네’라는 호칭을 쓰고 있는 것이 이채롭다.

여름날 고개를 내밀듯 붉고 큰 꽃송이를 피우다
활짝 핀 모습 그대로 지는 능소화는 송이채 져 버리기에
어여쁜 여인이 꽃이 되어 사랑하는 님을 기다리며
담 넘어를 굽어보았다는 전설이 담겨 있어.

위의 글이 죽음을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내의 절절한 감정이 그대로 담긴 편지였다면
아래의 글은 자신의 운명을 능소화에 빗대며
능히 하늘을 이기는 꽃인 능소화처럼
하늘이 정해준 자신의 비극적인 운명을
영원한 기다림으로 극복하겠다는,
그리고, 죽음으로써 다시 만나겠다는
그 의지를 시처럼 담아내고 있다.

가정의 달.
늘 가까이 있어 소중함을 모른다는 흔한 말이
400년 전 원이 어머니에겐 뼈에 사무치도록 아픈 말이였을거야.
더 이상 원이 어머니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편지에 쓰여진 대로, 그 길을 걷지 않았을까.

만약 가족을 만나러 먼 길을 떠났다면
최소한 6년 뒤 일어날 임진왜란은
겪지 않고 떠났길 바랄뿐.

(Edited)
출처 fmkorea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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