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말이 골목

김밥말이 골목

암초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따개비모양 봉제공장들이
저를 단단하게 오므린 채
거꾸로 서서 수천 대의
재봉틀로 하루를
돌린다

자꾸
달아나는 시간을
노루발로 고정하고 아찔한
곡선박기로 내일을 꿈꿔보지만
어김없이 되돌아박기가
여공들을 꿰매버린다

햇빛 한 점 안 들어오는
지하 공장은 먼지로 포화상태,
재단사의 가위질은 쉼 없이
여공들의 꽁무니를
베어내지만

그래도
김밥말이 골목은
그녀들의 꼬리뼈에
매달려 있다

재단사의 줄자가
정오를 휘감으면

봉제공장 거리의
봉합선이 뜯기고
여공들이 한꺼번에
밥알처럼 쏟아져 나와

한 땀 한 땀 김밥말이
골목으로 향한다

양은냄비보다
먼저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여공들은
수다를 첨가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피부색도 다르고
언어도 잘 통하지 않지만
김밥말이로 돌돌 말아
한통속이 된다

라면
다발과 함께
풀어지는 그녀들의
일상이 식당 아줌마의
손길을 거쳐 김밥에
뒤섞인다

식당
아줌마가 손으로
김밥을 꾹꾹 누를 즈음이면
그녀들은 도무지
열릴 것 같지
않다

접시에
담긴 김밥을
묵묵히 바라보며
그녀들은 옆구리가 터진
김밥처럼

네팔로
필리핀으로
소말리아로 연변으로
38선 이북으로
삐져나간다

굶주린
가족들을 생각하면
일용할 양식도 독약처럼
치명적이어서

김밥을
목구멍에 넘길 수
없다

목구멍이란
얼마나 질기고
처절한 골목인가

과연
김밥 한 줄로
그 골목을 통과해도
되는 걸까

그녀들은
막막하고 까마득하다.

-글/최일걸-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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