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슨 기관차 가득히 꽃을
당신이
내게 올 수 있다면
고원에 만발한
한아름
나리꽃 안고
산철쭉도 안고
그보다도 더 아리따운
환한 웃음 안고
내게
올 수 있다면
내가 나가 반겨
당신이 아닌
당신 몸이 아닌
당신의 꽃들과
웃음을 껴안고
눈물 흘릴 수
있다면
내가 이렇게
원주에서 해남으로
해남에서 원주로
북에서 남으로
남에서 북으로
오락가락할
이유가 없겠지
낡아빠진 석탄 차
녹슬은 기관차
지금은 국민학생들
구경거리로
전락해버린
차
그
차
휴전선에
잘린 경의선
경의선 화통
그것을 타고
내가 당신에게
갈 수 있다면
그
기관차를
새파란 동백잎,
빛나는 유자 무더기,
향기 짙은 치자꽃으로
무화과들로 가득
채우고 싶다
그리고
못난 내 얼굴에라도
함박꽃 같은 달덩이 같은
째진 웃음지어
만나고 싶다
나 오늘
눈 내리는
원주 거리에
다시 서서
다시금
남쪽으로 돌아갈
자리에 서서
거리를 질주하는
영업용 택시를 보며
경의선
끊어진 철로 위에
홀로 남겨진
기관차 속에
홀로 남을
민족의
외로움을 생각하며
소주 한 잔을
국토 위에 붓는다
아 아
꽃들이여
너희들의 영광은
언제 오려는가.
-글/김지하-
<시집명/검은 산 하얀 방 너머>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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