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당신의 이름에 관하여 >
4월이 오고도 몇 차례 눈발이 날려 온전한 봄
은 멀었나 싶었다. 하지만 오늘 집앞 잔디밭 위
로 살구꽃이 겨울을 밀어내고 활짝 피었다.
사실 이 집으로 이사와 13년 넘게 살았지만
아내와 나는 매번 이 꽃의 이름을 다르게 불렀
다. 어느 해는 벚꽃이라고 또 어느 해엔 매화라
불렀다. 오래전 고향에서 포도 농장을 했다는
이탈리안 집주인이 심어놓은 것으로 매년 봄만
되면 집앞 잔디밭 중앙에서 위풍당당한 5월의
신부처럼 빛난다.
결국 오늘 나는 꽃의 이름을 확인해주는 스마
트폰 앱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고 기어이
사진을 찍어 검색을 시도했다. 그러나 스마트
폰 앱의 검색 결과도 신통치는 않았다.
“이 꽃은 살구꽃일 가능성이 50% 이상입니다.”
그래서 나는 비교적 살구꽃일 가능성이 높은
꽃을 한동안 지켜보았다. 그러면서 내심 살구
꽃이 아닐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삶에서 경험하지만 가능성이 크다고 매번
정답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또 이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나도 나를
잘 모르는데 누군가는 나를 좀 안다고 할 것이
고 스스로의 판단으로 50% 이상의 가능성에
근접한 경우라면 나를 아주 잘 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물론 그뿐인가. 우리 현실
의 삶에서도 많은 것들이 확실치 않은 정보에
의해 판단되고 결정된다. 대학은 시험성적으
로 해당 학생의 가능성을 예상해 뽑고 기업은
스팩을 살펴 인재를 뽑으며 혼기가 다 된 남자
와 여자도 상대의 정보에 대한 각자의 기준과
판단에 따라 배우자를 고른다. 많은 중요한
결정들이 생각보다 불확실해 보이는 정보에
기대어 이루어진다.
문제는 순전히 내가 남의 판단으로 벚꽃이었
다가 매화꽃이 되기도 하고 다시 살구꽃으로
불린다는 점이다. 내가 나를 벚꽃으로 알고
있는데 상대방이 자꾸 나를 그가 가진 나에
대한 제한된 정보만을 가지고 살구꽃이라
부른다면 그것은 상당히 불쾌한 일이다. 더
심각한 일은 여러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나를
판단할 때다. 피부색, 출생지, 출신대학,외모
만으로 나를 특정한 카테코리 안에 가두어
판단하고 평가하는 일이 많다.이것은 정말
부당한 일이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받아들이며 산다.
요즘 자주 회자되는 4차혁명의 핵심 요소엔
빅데이터도 포함된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취합되는 정보를 활용해 정부는 민심을 읽고
기업인은 소비자의 취향을 분석해 신상품을
개발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욕망을 그 욕망
이 남겼다고 가정하는 흔적을 통해 마치 눈
에 보이는 것처럼 믿겠다는 생각이다. 다행
인지 불행인지 아직까지 빅데이터에 의한
예측들은 신뢰도가 높다. 그러나 눈에 보이
지 않는 것, 실체가 없는 유령은 언제든 우리
를 속일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정
보가 아무리 그럴듯해 보여도 매화꽃을 살구
꽃이라 불러서는 안 된다.
그리고 남의 판단에 따라 매번 이름이 바뀌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우린 우리의 이름을 먼
저 정확히 알아야 한다. 내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타인에 의해
잘못 불리우는 내 이름을 바로잡을 수 있다.
일방적인 타인의 판단으로부터 나를 변호할
수 있다.
나의 이름을 온전히 알고 지켜내려면 역시
자신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나이와 상관
없이 우린 계속해서 스스로에 대해 궁금해
하고 관심을 가져야 하며 소중하게 생각해
야 한다. 가족과의 대화를 통해서, 친구와
의 관계를 통해서,책과 영화나 연극을 통해
서,미술관의 그림과 예술작품 그리고 음악
을 통해서 내가 어떻게 반응하고 어떻게 느
끼며 어떤 즐거움을 느끼는지 그리고 가끔
스스로에게 많은 것들을 질문하고 답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언제부턴가 우리 세상은 남을 위해 살아야
먹고살 밥을 벌게 한다. 그래서 나를 위해
쓸 시간이 점점 준다. 그래서 나를 살피고
나를 위하고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 부족하
다. 이럴 때일수록 우린 더더욱 온전히 나
만을 위한 시간을 가지려는 노력을 해야한
다. 왜냐하면 언젠가 그런 시간들이 우리의
이름을 마음대로 바꿔 부르는 타인과 사회
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것이기 때문이다.
-글/김감독 DP-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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