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에 입을 옷이 없을 때 >
지난 2017년의 통계를 보면 지구 위의 인구
수는 대략 74억 9천 4백 명 정도입니다. 19
60년에는 30억 명 정도였지만 개발도상국
을 중심으로 10여 년마다 꾸준히 10억 명
가까운 인구가 쉼 없이 늘고 있어 세계의
인구는 조만간 100억 명에 다가서게 됩니다.
우리 주변에도 사람은 참 많습니다. 당장
집 밖으로 나서기만 해도 우린 바로 여러 사
람 속에 묻히게 됩니다. 학교와 직장 그리고
광장과 시장엔 더 많은 사람들로 가득합니
다.가족과 이웃 그리고 친구와 직장 동료들
도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그런데 우린 자주 ‘혼자’라고 느낍니다. 그
많은 사람들과 매일 섞이고 어울리는데 깊은
고독을 맛봅니다. 이제 갓 결혼한 부부 사이
에도 고독은 존재하고 오래도록 같은 집에
서 같은 밥을 먹으며 살아온 가족 사이에도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지는 모르나 한국인들은
더이상 고독에 대항하지 않습니다.아니 적극
적으로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입니
다. 혼밥,혼술, 혼자 영화를 보는 ‘혼영’과 혼
자 쇼핑하는 ‘혼쇼’까지 떳떳하게 고독을 내
놓고 즐기기에 이르렀습니다.
적극적으로 암을 정복하고자 했던
현대 의학이 어느새 몸속의 암을 잘 관리해서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치료 전략을
바꾼 것처럼 유독 한국에선 이 고독과
잘 지내자는 문화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언뜻 보면 다들 외로움에 대해
담담해 보이지만 다른 OECD 국가에 비해
행복지수도 떨어지고 자살률이
높은 것을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습니다.
지난해 영국에서 이런 조사 결과가 있었습
니다. 영국인 전체 인구의 14%에 해당되
는 900만 명 정도의 사람들은 자주 또는
항상 외로움을 느끼며 그들 가운데 20만 명
은 한 달 이상 그 누구와도 대화를 나누지
않을 정도로 극심한 고독 속에 살아가는 것
으로 나타났습니다.
급기야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는
최근 정부 차원에서 이 문제의
해법을 찾고자 ‘고독 문제 전담부’까지 신설
하고 부처의 장관을 임명했습니다. 이 기관
은 영국인들이 평소 느끼는 고독감의 원인
등을 분석 연구하고 사람과 사람을 잇는 단
체 등을 후원하는 방법으로 ‘고독퇴치’에
나설 계획이랍니다.
우리가 삶에서 느끼는 고독은 매일 반 갑
정도의 담배를 피우는 것만큼 몸의 건강에
도 해롭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결혼한
사람보다 싱글의 기대 수명이 짧은 것도 어
쩌면 이와 관련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고독감이 늘 해롭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생
각합니다.고독의 체험을 통해 오롯이 나에
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볼 수 있으며 타인
과 함께할 때의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알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독은 마
치 잠과 같아서 너무 깊이 빠져들면 몸과
마음의 건강을 해칩니다.
고독을 느끼는 사람의 몸에선 대개 염증
반응이 따라옵니다. 마음 속의 외로움이
우리의 몸에 염증을 일으켜 고통을 줍니다.
이건 참 흥미롭게도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모아줍니다. 평소 무심했던 직장 동료라도
갑자기 몸이 아프다 하면 아무래도 도움의
손도 내밀고 위로의 말도 건냅니다.고독은
이렇듯 위험한 수준일 때 통증까지 동원해
주변 사람들과 우릴 연결하고 어떻게든
우리가 그 고독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신호
를 보냅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장을 열면 매번 입에
서 튀어나오는 혼잣말이 있습니다.
“아…어쩜, 입을 옷이 하나 없네!”
옷장에 가득 옷들이 들어차 새로운 옷이
비집고 들어갈 공간이 없을 지경인데도
우린 입을 옷이 없다고 말합니다. 옷의
필요에 대한 우리의 입장 때문입니다. 벗
은 몸을 가리고 추위나 더위에 적합한
기능만을 기대했다면 우린 입을 옷이 없
다는 푸념을 내뱉지 않습니다. 우리가 옷
장을 열 때 유행을 기준 삼고, 나를 돋보
일 옷을 기대하기 때문에 어지간해선 맘
에 드는 옷으로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과거 한때는 분명 우리의 욕망이었던 그
많은 옷들이 변덕이 심한 새로운 욕망
앞에서 허깨비처럼 존재하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 적어도 현대인의 자발적인 고
독과 외로움은 이 욕망에 깊이 닿아 있다
고 생각합니다. 매체가 더욱 다양해지면서
우린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하루 종일 욕
망의 유령들을 지켜봅니다. T.V 드라마나
영화 ,SNS, 그리고 광고 영상 속의 현실
은 실은 욕망의 유령입니다. 현실과 유사
하나 우리의 욕망을 더 많이 반영합니다.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을 마치 가능한 것
처럼 포장합니다.그리고 평균적인 아름
다움,평균적인 행복, 평균적인 성공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사실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설교를 반복합니다. 그리고 아둔한
우린 점점 그것을 불변의 진리로 받아
들이기 시작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린 그
평균에 닿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우리
의 삶을 숨기고 가리거나 위장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과 어울릴
때 우린 더 많은 피로감을 느낍니다. 옷장
가득한 옷처럼 그 많은 사람들을 그저 불
필요하고 성가진 대상으로 느낍니다. 결국
혼자 숨어지낼 굴을 찾게 되고 끝내 깊은
고독 속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라 생각합
니다. 허망한 유령을 따라 걷다가 절벽 위
에 서는 것과 아주 유사합니다.
세상엔 사람이 가득합니다. 환절기 옷장
속의 묶은 옷들 보듯 우리 주변의 사람
들을 보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욕망에
경도되어 내게 필요한 사람이 없다 착각
해서는 안 됩니다. 하루하루 고단한 현실
을 착실히 살아내는 우리의 이웃이 우리
삶의 기준이고 또 그런 기준으로 나름의
행복을 가꿔가는 나의 삶이 진짜입니다.
T.V나 스크린, SNS 속의 세상이 현실이
아니라 나와 이웃이 실제 존재하는 곳이
우리의 진정한 현실입니다.
사람은 두 발로 걷기 때문에 자주 넘어
집니다.그런데도 우린 태어나서 두 발로
서서 걷는 것을 제일 먼저 배웁니다.먼
저 혼자 서고 그 다음에 다른 사람이 우
리에게 기댈 수 있게 하기 위함이 아닌
가 싶습니다. 그래야 언젠가 우리가 흔
들리거나 넘어질 때 다른 사람에게 기대
거나 손을 뻗어 도움을 청할 수 있습니
다. 혼자서는 온전히 살 수 없습니다.그런
간절함으로, 그런 따뜻한 애정으로 주변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간다면 우린 우리들
내면의 굴 속에 오래도록 머물 필요를 느
끼지 못할 것입니다.
곧 봄이 다가옵니다. 우리 모두가 이웃에
게 따뜻한 봄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그 깊은 굴 그 어둠에서
우릴 향해 나올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우리도 언젠가 그 이웃의 도움으
로 우리의 굴에서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글/김감독 DP-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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