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결정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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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결정하는 것

“행복은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의 문제다. 행복은 대상이 아니라 재능이다.”

           -헤르만 헤세-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는 아저씨가 있었다. 이른 세벽부터 악취와 먼지를 뒤집어쓴 채 쓰레기통을 치우고 거리를 청소하는 일을 평생 해온 사람이었다.

누가 봐도 쉽지 않은 일에다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직업도 아니고, 그렇다고 월급이 많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표정이 늘 밝다는 것이다.

하루는 그 점을 궁금하게 여기던 한 젊은이가 이유를 물었다. 힘들지 않으시냐고. 어떻게 항상 그렇게 행복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느냐고. 젊은이의 질문에 대한 환경미화원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나는 지금 지구의 한 모퉁이를 청소하고 있다네!”

이것이 바로 행복한 사람이 갖고 있는 프레임이다. 이 환경미화원 아저씨는 자신의 일을 ‘돈벌이’나 ‘거리 청소’가 아니라 ‘지구를 청소하는 일’로 프레임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구를 청소하고 있었다는 프레임은 단순한 돈벌이나 거리 청소의 프레임보다 훨씬 상위 수준이고 의미 중심의 프레임이다. 행복한 사람은 바로 이런 의미 중심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내일이다.”

“다시는 사랑하지 못할 것처럼 사랑하라'”

“늘 마지막 만나는 것처럼 사람을 대하라.”

가슴을 벅차게 하는 말들이다. 이런 말들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다시 보게 만들고 이제까지 단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방식으로 주어진 시간과 사람들을 대하게 한다.

이렇게 의미 중심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이 “그냥 하루하루 대충 사는 거지 뭐”라고 말하는 사람보다 더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을 산다는 건 자명한 일이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갖기 쉬운 프레임은 대게 하위 수준이다. “당장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귀찮아서’, ‘남들도 다 안하는데 뭘’, 등과 같은 생각은 하위 수준 프레임의 전헝이다

상위 수준과 하위 수준 프레임을  나누는 결정적인 차이는 무엇일까? 바로 상위 프레임에서는 ‘why’를 묻지만 하위 프레임에서는 ‘How’를 묻는다는 점이다.

상위 프레임은 왜 이 일이 필요한지 그 이유와 의미, 목표를 묻는다. 비전을 묻고 이상을 세운다.

그러나 하위 수준의 프레임에서는 그 일을 하기 쉬운지 어려운지,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성공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지 등 구체적인 절차부터 묻는다.

그래서 궁극적인 목표나  큰 그림을 놓치고  항상 주변머리의 이슈들을 좇느라 에너지를 허비하고 만다.

따라서 상위 수준의 프레임을 갖고 있는 사람은 No보다는 Yes라는 대답을 자주 하고, 하위 수준 프레임을가진 사람은 Yes보다는 No라는 대답을 많이 한다.

< 최인철/나를 바꾸는 심리학의 지혜 프레임>중에서

 

“실수한 적이 없는 사람은 결코 새로운 일을 시도해보지 못한 사람이다.”

상위 수준의 프레임이야 말로 우리가 항상 지향 해야 할 삶의 태도인 것이다.

어떤 프레임으로 세상을 접근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삶으로부터 얻어내는 결과물들은 결정적으로 달라진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중심적인 프레임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이미지를 타인에게 투사하는 버릇이 있다.

타인을 능력 차원으로 평가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평가할 때도 능력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현명한 소비자는 가급적 소유의 프레임을 피하고 존재의 프레임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에리히 프롬의 충고처럼 소유의 프레임보다 존재의 프레임이 삶의 질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 김종석의 독후노트 중-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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