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
어릴 적
내 기억 속 아버지는
분신인 듯 라디오를
품고 사셨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삶의 무게에 눌린 흠집을
훈장으로 안은 5단 서랍장 위에
박물관에나
있음 직한 허름한 라디오가
세상이라는 주파수에 맞춰
쇳소리를 내고 있었다
유행가보다
유행가 같은 뉴스가
아기의 옹알이처럼
허공을 메워갈 때쯤
인기척에 놀라
잠시 멈칫거렸을 뿐
이내 세상 엿보기를 이어가신다
그때 나는
아버지께서 왜 진종일
라디오를 틀어 놓았는지
알 길이 없었지만
시간이 흘러
붕어빵엔 붕어가
들어 있지 않다는 사실과
조금 더 흘러
자주감자엔 자주꽃이
핀다는 사실을 안 뒤,
아버지만큼의
나이가 되었을 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세상과 지극히
눈맞춤하고 싶었으며
세상으로 난 길을
당당하게 걸어가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절룩거리는 삶을 이끌고
직선으로 곧게 뻗은 주파수 위로
아버지의 울퉁불퉁했던
생이 지나간다
어지럽게
흩날리는 눈발 위로
나풀,
나비 한 마리 날아오른다
-글/오정신-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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