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들에 서다
무엇하나 탕진할 것 없는
빈 몸이다
몇 해 전 직장을 잃고
거리를 헤매던 때도
이렇게 절망스럽진 않았다
떠나는 날까지
헐렁한 가방 하나가
전부였던 너를 보내고
목숨보다 질긴
불운에 목을 놓으며
죽음으로 보낸 한 달
누구를 위해
어디로 가야 할까
살아있는 것은 오직
하루를 돌아도 지칠 줄 모르는
빈 들녘의 바람 뿐…
죽어 쓰러진 나무가
시신처럼 누워있다
살아 울창한 숲 한 번
이루지 못하고
혼자 휘청대다가
스스로 뿌리를 말려
죽었을 것이다
문득, 돌아본 등 뒤에
붉은 덩어리 하나
떨어져 제 살을 태우며
논바닥에 뒹굴고 있다
멀리서 힘껏 달려온
내 어린 사내의 환청이
고막을 갈갈이 찢어놓는다.
-글/박금숙-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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