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극장> 마지막 이야기

<골목극장> 마지막 이야기

대학 입시가 얼마 남지 않았던 가을 저녁이었다.
난 다가오는 입시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당시엔
세상에 학교와 집 말고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
는다는 마음으로 살았다. 워낙에 형편 없었던 수
학 성적 때문이었다. 다른 과목에서 어떻게든 실
점을 줄여야 한다는 압박감이 나를 늘 힘들게
했었다.

언젠가 희주는 동네 독서실 옥상에서 이차 함수
문제 하나를 두고 쩔쩔매는 나를 도와주면서 이
렇게 말했었다.

” 전혜린을 천재라고들 하지만…정작 서울대 법
대 입시를 치를 때 그녀의 수학 점수는 빵점이
었대. 수학은 말야 악보에 음표를 다는 규칙에
관한 것 같아. 이걸 잘 안다고 해서 훌륭한 연주
자가 되는 건 아니거든. 아무래도 입시에선 좀
손해를 보겠지만 너무 좌절할 필요는 없어.”

내가 갈현동 308번지를 떠나던 그해 가을, 현
수도 갑자기 아버지의 새 직장을 따라서 목동
으로 이사를 갔다.현수도 내가 떠나올 때처럼
사전에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홀연히 갈현동
을 떠났다. 그래서 학교에서 마지막으로 녀석을
보았을 때 조차도 나는 오랜 친구로서 변변한
작별의 인사를 나눌 수 없었다. 나중에 녀석이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난 깊은 우울
감으로 한동안 불면을 앓았다.그리고 문득 내가
같은 방법으로 갈현동을 떠나왔을 때 어쩌면
현수도 나와 같았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
서 나는 분명하지 않은 뭔가에 대해 깊이 후회
했다. 그러나 어쩌랴 우리의 청춘은 뜨거웠던
것 만큼 무모하고 불완전했으며 부조리했다.

“학생, 밖에 여학생 하나가 찾아왔어!”

방문 건너로 들리는 집주인 아주머니 소리에
나는 직감적으로 날 찾아온 사람이 희주일 거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잠시 주저했으나 이내
거울 앞에서 외투를 챙겨 입고 평소와 다르게
지나친 관심을 보여주시는 아주머니의 따가운
눈총 속에 대문 밖으로 나섰다.

대문 옆 긴 담장에 기대어 희주가 서 있었다.
어느새 단발 머리가 꽤 자라 머리끈으로 묶을
수 있을 정도가 됐다. 내가 나오자 담장에서 등
을 떼며 옅은 미소를 보였다.가뜩이나 모든게
작고 여린 아이였는데 이전보다 훨씬 더 야위
어 보였다. 나는 그래서 어둠 때문일 거라고 생
각했다. 늘 그랬듯 가을 저녁 찬바람 속에서도
희주가 빛나주기를 바랬기 때문이었다.

“희주야, 어떻게 여기까지…그동안 잘 지냈어?”

잘 지냈다는 대답을 기대했지만 갑자기 작고
여린 희주의 몸이 내 품으로 달려와 깊숙이 안
겼다. 내 턱 밑에 닿은 희주의 머리와 얼굴에서
가을 저녁 한기가 느껴졌다. 아마도 오래도록
문 밖에 서 있었던 것 같았다.내 자취방을 찾
는 게 쉽지 않았거나 날 만나는 일을 오래도록
주저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가만히
찬바람 속에 서 있는 희주의 어깨를 감싸안았
다. 그 때부터 희주의 어깨가 흔들렸다. 그래서
난 처음으로 희주가 우는 모습을 보았다.

그날 저녁에 나는 처음으로 나와 희주 그리고
현수의 성장에 대해 생각했다. 우린 가까운 친
구였지만 서로 각자의 방식으로 어른이 되어
가고 있었다. 더는 아이들처럼 살 수 없으니 우
린 어떻게든 그동안 서로에게 익숙했던 것들을
버려야 했다. 무지개 너머에 산다는 오즈의 마
법사도, 망또만 걸쳐도 하늘을 날 수 있었던 각
자의 영웅에 대한 믿음도 버려야 했다. 세상이
모두에게 공평하다는 착각도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기대도 심지어 이상
적인 사랑에 대한 환상도 먼 달 속에 토끼 두
마리가 산다고 믿는 생각만큼 어리석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마음 깊이 믿고 있던 영웅과 거
품 가득한 우상의 본질을 깨닫는 일은 혼란이며
또 깊은 상실이다.우린 모두 그 깊은 상실의 시
간에 사랑을 하고 우정을 나눴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희주가 내 품에 안겨 있는 동안에 나는 할 수만
있다면 내 몸이 봄날의 햇살이었으면 했다. 7월
한여름의 더운 숲이었으면 했다. 희주가 잠시라
도 그 숲에서 따뜻이 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찬바람 부는 가을 저녁과
함께 짙은 어둠속으로 서서히 사라져가는 우리
들의 10대, 그 뒷모습을 말이다. 그리고 우리가
울고 웃고 떠들었던 ‘골목극장’ 무대 위로 무거
운 막이 내려지고 극장 간판의 불빛이 얼마간
위태롭게 깜박거리다가 서서히 꺼져 가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나는 더이상 어린 아이처럼 울지
않았다. 나도 세상처럼 변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Epilogue

아내와 결혼 후에 뉴욕으로 떠나와 정착해 살며
딸아이를 낳았을 때 난 반가운 친구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게 된다.호주에서 안경점을 한다던
현수였다. 녀석은 자신이 운영하는 안경점 앞에
서 기타 하나를 폼나게 들고 사진을 한 장 찍어
보냈다. 나는 그 안경점의 상호를 보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녀석의 안경점 이름이 ‘His Zoo’
였기 때문이었다.희주에 관한 이야기는 애석하
게도 더 할 수 없다. 희주가 그걸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ㅋㅋㅋ

글/ 김감독 DP

*새로운 메뉴 페이지 ‘Korean Posts 우.사.이’
(우리네 사는 이야기)에 마지막편 까지 올렸습니다.
즐거운 추억여행 되십시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http://www.loaloachristiannetwo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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