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극장> 아홉 번째 이야기

<골목극장> 아홉 번째 이야기

나와 현수 그리고 이젠 희주까지 살게 된 갈현
동 308번지는 이전에 설명했던 것처럼 가파른
언덕을 사이에 두고 윗동네와 아랫동네로 구분
되어 있었다.골목부터 구불구불하고 오래도록
개발이 더뎌 낡은집이 많았던 아랫동네에 비해
윗동네의 형편은 괜찮았다.서구식 구조에 뒷곁
으로 잔디밭이 딸린 집들도 꽤 있었고 당시 고
급 승용차였던 로얄살롱을 두 대나 굴리는 집도
있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나 윗동네 아이들과 아랫
동네 아이들 사이엔 늘 적대감이 있었다.그래서
토요일이나 일요일 오후에 두 동네의 경계에
있던 공사장에서 맹렬한 투석전이 종종 벌어졌
다.매번 아랫동네의 전투력이 윗동네를 압도했
지만 이전 이야기에서 이미 설명했듯 초등학교
시절 현수가 등장하고부터 윗동네 우세로 전세
가 뒤집혔다.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비었던
공사장에 건물이 하나 둘 들어섰고 투석전도
사라졌다.치열했던 윗동네와 아랫동네 사이의
전쟁도 또래들의 기억에서 점차 지워져 갔다.

그런데 현수가 던진 돌에 맞았던 아랫동네 종혁
이 이마의 상처는 세월과 함께 더 또렷해졌고 더
크게 자랐다.그 상처를 매일 아침 거울을 통해
보면서 아마도 종혁이는 현수에 대한 복수의 칼
을 갈았던 것 같다.종종 어떤 진실은 세월과 함
께 그 위에 켜켜이 쌓인 먼지로 인해 숨겨졌다가
어느날 불어온 바람으로 그 모습을 드러낼 때가
있다.현수와 나에게 종혁이가 그랬다.우리 기억
에 녀석은 마냥 소심한 아이였다. 그런데 고등학
생이 되고부터 소문을 통해 듣게된 녀석은 크게
달라져 있었다.152번 종점 지역에서 활동하는
불량배들과 어울렸고 학교에서 선배의 머리에
교정에 있던 화분을 던져 정학처분을 받은 전력
도 있다고 했다.그런 소문이 돌 때 조차도 우린
종혁이의 이마에 난 상처가 녀석의 삶에 그토록
커다란 영향을 미치리라곤 상상조차 못했다.

종혁이의 이름이 지역 아이들의 입에 자주 언
급 되면서부터 윗동네 또래들에게 녀석이 조만
간 현수를 칠거라는 소문이 돌았다.하지만 나는
절대 그런 일은 생기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무엇보다 현수에겐 지역 불량배들도 절대 건드
리지 못하는 놀라운 싸움 실력을 갖춘 현석이
형이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나의 확신은 그해
여름방학을 넘기지 못했다.기대했던 현석이 형
이 군에 입대했기 때문이다.급기야 우리 동네
‘골목극장’으로 폭풍전야와 같은 불안의 공기
가 서서히 스며들기 시작했다.

나는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잠시 가족이 있는
경기도의 신도시에 머물렀다.아버지의 사업은
제법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았다.동생들도 새로
운 학교와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이 만족스럽다
고 했다.

“혜준아, 너 밥은 잘 챙겨먹고 있는 거냐? 어째
엄마 얼굴엔 네 얼굴이 반쪽이다.아직도 대충
라면이나 식빵으로 끼니를 때우는 모양이구나.”

“엄마, 잘 챙겨먹고 있어요.너무 걱정 마세요!”

“여름방학 동안이라도 엄마가 해준 밥을 먹으면
서 여기에 머물지 그러니?”

어머니의 간곡한 제안이 내 마음에 전혀 와닿지
않았던 것은 아무래도 희주와 현수가 없는 내 삶
때문이었다.그만큼 하루 세 끼 챙겨먹는 것 못지
않게 내게 중요한 두 사람이 있는 공간을 떠날
수 없었다.아버지는 첫 학기 내 성적표를 보시면
서 도무지 읽어낼 수 없는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혜준아,돌아가신 너희 할아버지가 내게 그러
셨다.우리 가문의 남자들은 철이 좀 늦게 드는
공통점이 있다고…힘들더라도 네가 앞으로 어
떤 어른이 되어 뭘 하면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
지에 대해 늘 고민하며 살아야 한다.”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를 타고 차창 밖을 내다보
는데 가슴 어딘가가 시큰거렸다.아버지가 해주
신 말씀때문이었다.나는 앞으로 어떤 어른으로
어떤 일을 하며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에 대
해 처음으로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이제
더는 소년으로서의 삶을 살 수 없구나 하는 자
각과 함께 어른으로서 살아가야 할 내 미래에
대한 생각을 했다.그건 뿌연 안개와 같았고 또
막연했지만 꼭 답을 찾아야 할 문제라고 생각
했다.그리고 그해 여름,나는 희주의 제안을 받
아들여 내 생애 첫 단편 소설을 써내려가기 시
작했다.

<소음기행>라는 제목을 달고 쓰여진 내 작품은
글을 쓰긴 전 특별한 구성이라던가,등장 인물에
대한 연구,최소한 필요했던 기획 의도조차도 없
었다.그냥 내 손에 쥔 연필이 내 마음 가는대로
이야기를 옮겨적었다.

그 단편의 줄거리는 이랬다.공사장에 나가 일하
며 일용할 임금으로 간신히 하루를 버티는 남자
가 있다.어느날 갑작스러운 폭우로 인해 남자의
작업장이 폐쇄 된다.하루를 공치게 된 남자는
동료들과 어울려 낮술을 마신다.비는 여전히 거
세게 쏟아지고 남자는 만취해서 초저녁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혼자 기거하는 집을 찾아가게
된다.동네 골목길로 접어들었 때,굵은 빗줄기
때문에 분명하지는 않았지만 수녀복을 입은 한
여성이 걸어오는 것을 본다.그리고 아주 우연히
그녀와 어깨가 부딪힌다. 그리고 취기 때문에
바닥에 넘어지면서 의식을 잃어버린다.문제는
남자가 경찰서 유치장에서 깨어났을 때이다.남
자는 수녀를 폭행한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되고
울고 있는 수녀는 요목조목 그날 일에 대해 진
술한다.남자는 난처해진다.도무지 기억나는 이
미지는 없고 폭우가 쏟아지던 그날의 행적은
비교적 또렷한 소리에 대한 기억 뿐이다.남자는
결국 그날 그의 귀가 기억하는 소리에 대해 모
든 것을 진술하기 시작한다.경찰서 창밖으로는
여전히 폭우가 쏟아진다.남자의 귀가 기억하는
소리를 듣던 경찰서의 수사관들은 최면에라도
걸린듯 남자의 진술에 점점 더 빠져들기 시작
한다.결국 남자는 모든 혐의를 다 벗고 경찰서
에서 나온다.밖의 비는 멈췄고 하늘엔 해가 쨍
쨍하다.

이 단편 소설을 다 쓰고 나는 한걸음에 희주를
찾아갔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희주는 동네 인근 공원 벤치에서 꼼짝않고 단번
에 내 단편 소설을 다 읽었다.그리고나서 가만
히 나를 꼭 끌어안았다.희주의 몸에서 다시 오
래전 그 좋은 냄새가 났다.그리고 내게 조용히
한동안 귓속말을 했다.하지만 나는 그날 희주의
말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희주에게서 나던 좋
은 냄새 때문에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글/김감독 DP-

 

*새로운 메뉴 페이지 ‘Korean Posts 우.사.이’
(우리네 사는 이야기)에 10편 까지 올렸습니다.
즐거운 추억여행 되십시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http://www.loaloachristiannetwo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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