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시인 이정하의 눈물겨운 참회록

베스트셀러 시인 이정하의 눈물겨운 참회록

 

1990년대에 사랑을 했던 사람치고 이정하 시인의 시집 한 번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1987년 문단에 데뷔한 그는 대표작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를 비롯 ‘한 사람을 사랑했네’, ‘사랑하지 않아야 할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면’ 등 줄곧 사랑에 관한 글을 써왔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시로 사랑을 고백하고 실연의 아픔을 달랬다.

잘나가던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그는 한동안 활동이 뜸했다. 매년 새로운 히트 작품을 내놓던 1990년대와는 달리 2000년대 들어서는 이렇다 할 신작이 없었다. 그런 그가 요 근래 다시 활발한 집필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2007년에는 생애 첫 소설을, 지난해는 에세이를 선보였다. 최근에는 또 한 편의 신작 에세이 『사랑이 켜지다 로그인』을 펴냈다. 이 작품은 인터넷이란 가상공간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을 담아냈다. 그는 새로운 형태의 사랑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한다.

“시대가 흐르면서 사랑의 소통 방식 또한 많이 변했어요. 예전에는 ‘사랑’은 곧 ‘기다림’이었잖아요. 고백을 할까 말까 망설이고, 고백이 담긴 편지를 쓰면서 또 고민하고, 편지를 다 써놓고도 줄까 말까 생각이 많았죠. 그런데 요즘은 문자 메시지 한 통, 메신저 대화로도 고백을 하더라고요. 시대에 맞게 변해 가는 사랑법이 재미있으면서도 한편으론 가볍게 사랑하고 헤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해요.”

베스트셀러 작가 되니 자만심 생기더라

 

그는 사실 온라인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에 익숙치 않다. 가끔 이메일을 주고받는 정도일 뿐, 컴퓨터는 주로 글을 쓸 때만 사용한다. 그럼에도 인터넷 사랑을 소재로 작품을 쓴 유는 그가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는 “사랑을 해본 경험이 많은 것도 아니고 사랑에 대해 100% 안다고 할 순 없지만 비교적 다른 작가보다는 사랑에 대해좀 많이 아는 편”이라 자신했다.

실제로 그는 사랑에 대해 관심이 많다. 책, 영화, 라디오, 주변 사람 등을 통해 사랑 이야기를 접한다. 그에게 구구절절한 사랑 이야기를 보내오는 독자도 많다. 그는 눈만 뜨면 사랑을 하고 헤어지는 생활이 반복되는 셈이다.

“제가 쓰는 사랑 이야기는 모두 아파요. 뜨겁게 사랑하고 헤어진 이야기죠. 저는 제 글을 읽는 독자들이 가슴 절절한 이야기를 통해 ‘난 그래도 저만큼 아프진 않으니 다행이야’라고 위안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그는 사랑 이야기로 돈은 많이 벌었지만 마음은 점점 가난해져 갔다고 지난날을 고백했다. 나름대로 쓰고 싶은 글도 있고, 또 마음이 내킬 때 글을 쓰고 싶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출판사와의 계약도 지켜야 하고, 그 무렵 그에게는 책임져야 할 가족도 생겼다. 결국 그는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쓰기 위해 2000년도에 출판사를 만들었다. 그러나 막상 출판사를 차리고 보니 여러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의 원고를 읽고 고치는 게 일이 되다 보니 정작 자신의 원고를 쓸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글도 잘 안 써지고 슬럼프까지 겪어야 했다.

게다가 야심차게 문을 연 출판사도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았다. 출판도 결국 장사였다. 책을 내는 것과 만든 책을 파는 것은 달랐다. 하지만 상황이 안 좋아지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직원 수를 늘리고 책을 더 많이 만드는 등 공격적으로 경영을 해나갔다. 그럴수록 상황은 악화되어 갔고 더 많은 자금이 필요했다. 결국 그는 돈을 구하기 위해 이것저것 손을 대기 시작했다. 도박도 그중 하나였다. 우연한 기회에 도박을 하게 된 그는 처음에는 돈을 땄다.그 재미에 한두 번 더 하다가 자꾸 돈을 잃자 그 후로는 무서운 속도로 도박에 빠져들게 됐다. 도박의 특성상 한번 빠져들면 대부분 중독에까지 이르게 마련.

그 역시 자신도 모르게 도박에 점점 빠져들고 말았다. 한번은 하루에 2천~3천만원씩 따서 열흘에 3억원을 모은 적이 있단다. 그때 그는 2억원은 급한 빚을 갚고 1억원을 가지고 다시 도박장으로 향했다. ‘한 번만 더 이만큼만 따자. 그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채 두 시간도 못 되어 가진 돈을 다 잃었다.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사실 그동안 출판사가 어렵긴 했어도 그럭저럭 이겨낼 수 있었는데, 그가 도박을 접하면서 급격히 더 어려워졌다.

“도박장은 굉장히 무서운 곳이에요. 요지경 속입니다. 도박하는 사람들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하기 위해 도박장 안에 창문과 거울, 시계를 없애버립니다. 저같은 아마추어가 도박장에서 승부를 내려 하니 되겠어요? 전 제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도박을 하겠다고 하면 쇠사슬로 묶어서라도 못 가게 할 거예요.”

2003년 무렵에는 더 이상 손을 쓰기 어려운 상황에까지 이르게 됐고, 그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전국을 떠돌았다. 당시 프랑스에서 지내고 있던 아내와 아이들, 그와 함께 지내던 어머니와도 연락을 끊고 2년 가까이 혼자 방황했다. 밥 사 먹을 돈도, 잘 곳도 없이 어렵게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가족들은 외국에 있지, 출판사는 부도났지, 돈은 필요하지 참 힘든 시기였어요. 나중에는 빌릴 만한 데서는 돈을 다 빌렸는데도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힘들게 지내고 있는 저를 언론사에서 많이 찾아왔었죠. 당시 사회적 핫이슈가 기러기 아빠였는데, 잘나가는 시인이 기러기 아빠인데다 금전적 어려움까지 겪고 있으니까 다큐멘터리로 꾸미기 딱 좋잖아요. 사람들 피해 다니느라 고생했어요.”

결국 설립한 지 4~5년 만에 출판사 문을 닫고 말았다. 그동안 그가 쌓아놓은 모든 것이 한순간에 다 날아갔다. 그렇게 몇 년간 그는 깊은 수렁에서 헤어나오지 못했고 온몸의 힘이 다 빠지고서야 가까스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땐 자신이 왜 정신을 차렸을까 싶을 정도로 상황이 너무 참담했다고.

그런 그가 절망 속에서 헤어나기 시작한 때는 2005년 무렵이다. 사람을 피해 숨어 지내던 어느 날 우연히 길에서 만난 한 친구 덕분이었다. 길을 지나다가 그를 발견한 친구가 달려와 그를 와락 끌어안았는데, 당시 그는 반가움보단 창피하고 부끄러운 마음에 고개를 들지 못했단다. 그때 그 친구는 다 안다는 듯이 그의 등을 두드리며 ‘일어나 임마, 어서 걸어가야지’라는 말을 해줬다. 그는 친구의 말을 듣는 순간 ‘그래 맞아. 내가 일어나서 걸어가면 되지’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 뒤로 그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토록 안 써지던 글이 술술 써지는 것을 보면서 신기하기도 하고 ‘이게 나의 길이구나’ 깨달았다.

방황과 깨달음 담은 자전적 소설 집필 중

누구나 감기에 걸린다. 감기에 걸린 당시에는 열이 나고 몸이 아프지만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는 좀 독한 감기를 앓았을 뿐이다. 주위 사람들은 방황을 마치고 돌아온 그를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따뜻하게 격려해 줬다.

“아직도 어려운 상황이지만 살면서 방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여러 가지를 경험해 보는 것이니까요. 다만 저의 방황으로 가족을 힘들게 했던 게 미안할 따름입니다. 2년 전 『나비지뢰』를 탈고할 때쯤 눈이 안 보인다던 어머니는 요즘도 몸이 좋지 않으세요. 그 눈에 숱한 눈물을 흘리게 했으니 저도 참 못난 아들입니다.”

문단에 데뷔한 지 어느덧 21년. 그동안 그에게 문학은 닳은 신발 같은 것이었다. 버리려고해도 버릴 수 없이 질질 끌고 다녀야 하는. 하지만 이제 그는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결국 글 쓰는 일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게 됐다.

그는 요즘도 사랑에 관련된 소설을 쓰고 있다. 이번에는 사랑을 거래하는 이야기다. 첫 장편 소설이 생각만큼 팔리지 않는 걸 보며 사랑은 쉽게, 유치하게 써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단다. 중년 남자와 젊은 여자의 사랑과 그 이면에 숨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담아 올겨울 즈음 발간할 계획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재미있지만 처참했던 경험이 많아요. 그런 일들을 겪으며 삶에 대해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사실 사랑 소설 말고도 또 준비하고 있는 책이 있어요. ‘비겁’이라는 연작시인데 저의 비겁했던 일들을 시로 고백하려 해요. 다른 사람들도 저의 고백을 통해 자신의 비겁했던 순간을 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는 한때 팍팍한 현실을 도피했던 비겁한 가장이자 아들이었다. 또 글이 써지지 않는다고 아예 출판계를 떠나려 했던 비겁한 시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새로운 꿈을 꾸고 있는 그는 프랑스에 떨어져 사는 딸이 대학 입시를 앞두고 있다며 “아빠를 생각하는 마음이 지극한 딸을 위해서라도 지금보다 더 열심히 살려고 합니다.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고 싶어요”라며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순박한 시인은 세상을 겪으며 더욱 단단해져 가고 있다.

 

-취재/윤혜진 기자 –
출처: KoreaDaily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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