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의 조건
“너는 예단 얼마나 드렸어?”
아악! 그저 못들은 체 하고 싶다.
나름 결혼 5년차 선배라고,
하나 둘 결혼하는 친구들의
폭풍 질문세례가
쏟아지게 된 것이다.
나는 이럴 때,
“응? 나는 진짜 잘 몰라..
아마, 천만 원 드리고
오백만원 받았었나? 그럴걸?“
천만 원을 드리고
오백만원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어디에선가 주워들은 이야기였다.
요즘은 대부분 그 정도 그렇게 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렇게 위기상황을 모면했다.
그런 괴로운 순간은 그저
최대한 번개처럼 빠르게,
누구의 기억에도 각인되지 않게,
스치듯 지나치고 싶었다.
————
철도 없지,
스물다섯에,
모아놓은 돈 하나 없이
덜컥 임신부터 해서 결혼하게 된 나는
엄마의 도움이 절실했다.
하지만, 가정형편이 넉넉하진 않아서
아무리 적게 준비해도 엄마는 무리였다.
어쨌든 나는 남들만큼 하지 못했다는 것은
알고는 있었다. 확실히.
하지만, 그런 현실적인 이야기는
묻기도 듣기도 생각하기도 불편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체로 살았는데,
동생결혼으로 현실과 마주치게 된 것이다.
우리 시어머님은
집으로 보낸 이불을 반품하신 것은
물론이고, 이바지 음식도 극구 사양하셨다.
그리곤 단 이백만원만 받으셨다.
적게 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시댁에 할아버님 내외만 여덟 분,
아버님 형제 내외만 여덟 분,
아무리 작게 계산해도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모르면 몰랐을까.
알게 된 이상 넘어갈 순 없었다.
나는 동생이야기를 슬쩍 얹어
조심스럽게 어머님께 이야기를 꺼냈다.
“어머님 감사해요,
엄마한테 이야기 들었어요.
예단..“
5년 전에 했어야 할
이야기가 그 날
그렇게 시작되었다.
어머님은,
“아 그거? 뭐가 고마워!
싸우지 말고, 잘 살아“
하시곤,
“아! 혹시 기죽거나 그러지 마.
엄마가 할아버지 댁이나
고모님 댁이나 친척들에게
다 부족함 없이 보태서 드렸어.
물론 네가 드렸다고 하고
알겠지? 싸우지 말고!
잠 좀 자고!
날자랑 더 많이 놀아주고!
그러면 돼“
–
본디 자랑이란,
더 많이
더 비싼 것을 가진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전유물이라 생각했지만,
이럴 땐,
때론 적게 가진 것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자랑이 되기도 한다.
–
오랜 준비를 갖추고 하는
다른 사람들의 결혼식만큼
중요해 보이지 않을까봐,
내 결혼이
얼룽 뚱땅 해치우는
편의점 3분 음식처럼
치부될까봐 나는 그동안
이런 진실에 불편해 했지만,
이건 숨길일이 아니라,
드러내 자랑할 일이었다.
도대체 이런 게 자랑거리가 아니 라면
무엇이 자랑거리란 말인가!
이왕 거짓말을 할 것이었으면,
나는 그보다 더 멋지게 했어야했다
짐작보다 금액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확 줄여서 자랑했어야 했다.
“아, 예단?
나는 하나도 준비 안했어!
글쎄 어머님이 내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그냥 몸만 오라고 하시더라고! “
이렇게 자랑해야했다.
자랑의 기준은 이래야 하지 않을까?
-글/날며-
<날며의 결혼일기 中>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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