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사는 이야기>
‘경민 엄마야 복받아라’
화장대 위에 남편이 꺼내놓은 사진에서
밝게 웃고 계시는 어머님의 모습에
오늘따라 함께했던 시간들이
마음 밖으로 불쑥 올라온다.
목욕을 시켜드릴 때마다
‘경민 엄마야 복받아라’ 하시던
힘없는 어머님의 목소리는 시간이 많이 흘러도
큰집 욕실에 들어설 때면 늘 마음으로 다가온다.
그나마 둘째 며느리가 의지가 되시는지
속상함을 풀 때는 나를 찾곤 했다.
그러면 난 어머님이 마음이라도
편하시라고 기꺼이 한편이 되어준다.
어머님은 이북이 고향이라 북에 두고 온
동생분들을 늘 그리워하셨는데,
이산가족 찾기 소식을 들으시고는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명단에 올려놓아도 연락이
오지 않은 긴 기다림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아시는지 참 힘들어하셨다.
결국 어머님은 동생분들을 그리워만 하다
마음에 담고 떠나셨다.
그때만 생각하면 아쉬운 생각뿐이다.
만석꾼의 딸로 부모님과 동생들과의
소중한 추억을 고스란히 남겨놓은
고향집 이야기를 할 때면,
행복하시면서도 한편으론
진한 그리움으로 마음에
그늘이 지기도 하셨다.
며느리 생일이면
느린 걸음으로 물냉면을 사가지고
오셔서 퉁퉁 불은 물냉면을
생일 때마다 먹었던 기억은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온다.
길을 걷다 할머니들이
지나가시는 모습에서, 어머님이 생각이 나는
건 함께했던 추억이 많아서 인거 같다.
우린 우리 가족만 여행을 해 본 기억이 없다.
무뚝뚝한 아들은 늘 어머님을 모시고
여행을 다녔고, 나 역시 연세 많으신 어머님이
언제 아들과 손주들과 함께 자주
여행할 수 있을까 싶어서 당연히 모셨다.
어머님이 바다를 좋아하셔서
늘 여행지는 바다 쪽이었다.
노을 지는 바다를 보며 카세트 라디오에서
나오는 흘러간 옛 노래를
함께 부르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우리들 곁에서 떠나신지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도
이렇게 가끔 생각이 나는 건
넓어지는 나의 나이테 때문인 거 같다.
부모님은 우리에겐 잊히지 않는 큰 추억이다.
추억은 언제나 우리의 마음속에
그리움이란 이름으로 자리하고 있다.
못내 다하지 못했던 시간들이 회한으로
다가올 때는 말없이 부모님 생각에 잠겨본다.
추억과 그리움도
우리가 돌아보지 않으면 사라진다.
늘 마음에 품고 있다 괜스레 삶이
팍팍해질 때에 꺼내보면 위안으로 돌아오는 게
부모님과의 추억이 아닐까 싶다.
화장대 위 어머님 사진이 밝게 웃으며
경민 엄마야라고 부르는 듯도 하다.
황혼에 들어선 나이,
살아온 날들보다는 살 날이 훨씬 더 짧은 내 인생
정말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늘 걱정을 해주시던 어머님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마음 하나만으로
위안이 되어주는 사람이고 싶다.
글/진주향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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