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없을 순수 영혼 나의 남편 천상병
– 목순옥-
나의 남편 천상병 시인은 한마디로 남편이라기 보다 늘 일곱 살짜리 같다는 별명을 붙일 만큼 아기 같은 심성을 가진 남편이다. 때로는 깔깔 웃다가 마음에 안 들면 “문디 가시나”(본인은 애칭이라 함)라고 말을 뱉곤 했다.
남편과의 인연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오빠를 따라 서울에 왔다가 명동 ‘갈채다방’에서 그와 처음 인사를 나눈 것으로 시작됐다. 그 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살게 되면서 ‘갈채다방’에 더욱 자주 들르게 됐다. 그때 많은 문인들과 만나게 되었다. 서정주 선생님을 비롯해서 김동리·손소회·박기원·황금찬·박재삼·이근배 선생님 등 많은 분들이 계셨다. 오빠는 ‘금문다방’ ‘은성다방’ 등 여러 곳을 나를 데리고 다녔다. 오빠 친구들이 동생처럼 아껴주시고 귀여워해주셨기에 천상병 시인과도 가깝게 지낼 수 있었다. 오빠 친구들과 함께 영화도, 연극도, 대폿집도, 자연스럽게 다녔다. 그때 나의 눈에는, 많은 문인들의 모습이 순수 그 자체처럼 보였다.
욕심 없이 살아가는 그 모습이 왜 그렇게 좋았는지 돌이켜 생각해본다. 내가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다시 가난하고 고생스러운 삶을 택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도 생긴다. 그러나 긴 터널을 빠져나왔다는 안도감으로, 잘 견디어낸 나 자신에 감사하고 싶다.
천상병 시인이 나의 남편이 되기 전의 일이다. 1967년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6개월 옥고를 치른 후 부산 형님 댁에 내려갔다가 7개월 만에 서울에 올라온 그는, 시립정신병원에 입원까지 하게 된다. 그의 입원 사실을 모른 채 행방불명이 되었다며 걱정하던 친구들이 여기저기 수소문해도 연락이 없자 죽었다고 생각하고, 유고시집을 만들기로 했다. 성춘복·민영·박재삼 선생들께서 흩어져 있던 그의 시들을 모았다. 민영 선생님이 원고를 정리하시고 성춘복 선생님이 돈을 마련하셔서 유고시집《새》가 나왔다. 김구용 선생님이 쓰신 <내 말이 들리는가>라는 서문은 가슴을 아프게 했다.
시집 발간 이후 천상병 시인은 시립정신병원에서 발견되었다. 그러니까《새》는 살아 있는 사람의 유고시집이 된 셈이고, 그것은 천상병 시인만이 가진 유명한 일화가 되었다. 나는 정신병원을 찾아가 그를 면회했고, 병원에서 그를 보살펴주던 김종해 박사님의 권유로 그를 퇴원시켜 2주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김동리 선생님의 주례로 종로5가 동원예식장에서 식을 올렸다.
수락산 밑 초가집 문간방 하나를 얻어놓고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아침이면 일어나 수락산 입구까지 산책하고 돌아와 아침을 먹고, 소꿉놀이하듯 그렇게 시작한 신혼생활은 상상을 초월한 생활이었다. 그 사이 또 한 번의 정신병원 입원 등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꿈이라 생각하고 싶을 뿐이다.
결혼생활 20년, 참으로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살앗다. 남편을 두고 기인이라는 사람들이 있지만, 남편은 결코 기인이 아니라 순수한 삶을 살다 간 아이 같은 심성의 시인이었을 뿐이다. 아마도 그런 순수한 마음의 사람은 앞으로 다시 없을 것이라고, 나 자신에게 거듭 말하곤 한다. 그를 오십년 동안 거울 안 같이 들여다 본 나이기 때문에 감히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남편이 하늘나라로 간 지 30년(13년인데 표기가 잘못된 듯 합니다. 김승규). 올해도 의정부 예술의 전당에서 천상병예술제가 열린다. 앞으로 남은 내 생도 남편을 위해 쓰고 싶다. 소풍 끝내는 날 가서 보고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 월간 문학사상 2006년 4월호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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