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에게 걸음마
친한 언니가 어느 날
정말 조심스럽게 내게 물었다.
“날며야, 이런 이야기 좀 그렇지만,
혹시… 아버님 돌아가셨니?
내가 말하다가 실수를 할 것 같아서..“
“네?! 아니요! 아니요!”
내가 아빠 이야기를 밖에서
정말 안하긴 안하나보다.
다른 집들은 아빠와 딸 사이가 가깝다 지만,
나와 아빠는 그렇지 않았다.
우리는 정말 ‘인사’만 하는 사이였다.
내가 어렸을 때는 아빠가 바빴다.
아빠가 집에 있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고,
내가 성장하고 나서부터는 내가 엄청 바빴다.
내가 집에 있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전혀 친해지지 못한 채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그 상태 그대로 내가 결혼을 했다.
결혼 식 전날 아빠와 딸이 손을 잡고
웨딩마치를 연습하는 그 흔한 텔레비전 속
따듯한 장면도 우리 집엔 없었다.
나는 성인이 되어 처음으로 결혼식 날
아빠의 손을 잡았다.
나는 질풍노도, 아니 폭풍노도?
대참사의 시기를 고3때 겪었는데,
정말 그 사춘기의 시기를 되돌아보면,
나는 그 시대 대표적인 반항아였음이 틀림없다.
아빠는 어떻게든 나를 고치고
제자리로 돌아오게 하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나는 더 멀리 도망갔다.
그 날도 아빠가 나를 불러 이러면 안 된다고,
한참 말씀하셨는데, 내가 계속 말대답을 하니까.
결국 좋게 말하던 아빠도 화가 나서 물었다.
“ 너는 도대체 부모님을 존경하는 거야 !안 하는 거야!”
나는 3초도 되지 않아 대답했다.
“안 하는데요?”
당황한 아빠가 되물었다
“뭐!? 너를 낳아주신 부모님을 존경 안 해?”
“낳기만 하면 존경하나요?
아빠가 장보고도 아니고, 이순신도 아니고
세종대왕도 아니고, 이성계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데. 어떻게 존경해요? 무엇을?“
나는 내가 국사시간에 배운 모든
알고 있는 위인들을 열거하며,
(이러라고 배운 게 아닐 텐데..)
내가 생각하는 존경이란 무엇이고,
엄마와 아빠는 그 존경에 해당하는 일을
하나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로 존경하지 않는다고 한 마디 한 마디
꼽아 말했다.
아빠는 그 날 처음으로 날 때렸다.
신문지를 돌돌 말아서 손바닥을 때렸는데,
나는 그 한 대 한 대가
엄마한테 맞을 때보다
훨씬 더 아팠다.
시간이 흘렀고,
나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그 뒤에도 우리는 서먹한 사이였으므로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아빠도 그 일을 기억하고 있을까?
나는 그 일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부모가 되어보니,
부모로 살아간다는 것은
인정받을 곳이 , 고생을 보상받을 곳이
자식밖에 없다.
‘아빠 고마워요! 아빠 덕분에! 학교도 다니고,
예쁜 옷도 사 입고! 맛있는 것도 먹고!‘
이런 말을 들으면,
그동안의 고생도 매일 매일의 피곤함도
씻겨 내려가는 건데..
당신은 존경할 만한 일을 단 하나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존경할 만한 삶을 살지 않았다는
말을 한 나는
도대체 뭐하는 인간인가
그 말을 들은 아빠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삶의 회의를 느꼈을까.
인생에 만약 숙제라는 것이 존재 한다면,
반드시 해야 할 일 이라는 것이 존재 한다면,
그것은 아마 아빠에게 사과하고,
아빠와 친해지는 일일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너무 쉬운 이런 일이
내게는 숙제로 느껴질 만큼 어렵지만…
작년 아빠 생일에는
“아빠 생일 축하해요” 라고 말했다.
아빠는 “우리 딸이 왠일이야! 애 낳더니! 많이 달라졌구나 고마워”
라고 말해주었다.
이번 설에는
“아빠 건강 하세요”
라고 말할 것이다.
아이가 처음 말을 배우는 것처럼
그렇게 천천히 포기하지 않고,
아빠에게 이제 다가갈 것이다.
당연히 아빠를 존경해요. 사랑하고요…..
이 말을 할 수 있을 때까지.
-글/날며-
<날며의 결혼일기 中- 아빠에게 걸음마>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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