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옷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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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옷장

유년시절의 어느 뜨거운 여름이었다.

밖에서 아이들과 신나게 뛰어놀다가 점심 때가
되어 집으로  막 들어서던 길이었는데 나는 아주
이상한 장면을 목격한다.연세 많으신 친할머니가
옷장 앞에 쪼그려 앉으셔서 옷가지 하나를 얼굴
에 묻고 울고 계셨다.나는 그 모습이 하도 이상해
마루에 그대로 앉아 열린 방문 너머로 보이는 그
기이한 장면을 한동안 계속 지켜보았다.

할머니가 들고 계셨던 옷은 수년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한복이었다. 당시 할머니는 이런저런
할아버지의 유품들을 모두 정리하셨지만 그 옷만
은 옷장에 곱게 개어 소중히 보관하셨다. 나는 배
가 너무 고팠지만 그때만큼은 할머니에게 점심을
차려달라 졸라대고 싶지 않았다.그날 할머니는
꽤 오랜 시간동안 할아버지의 한복을 안고 우셨다.

그 일이 있고 할머니가 집을 비우셨을 때,나는 같은
옷장을 열고 할아버지의 한복을 꺼내 할머니와
같이 얼굴을 묻어보았다.무엇이 할머니를 우시게
만들었는지 궁금했다.한복에선 옷장 속의 나프탈렌
냄새와 나의 기억만큼이나 흐릿한 할아버지의
체취가 느껴질 뿐이었다.할머니가 참 이상하다
생각했던 날이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나 나는 뉴욕으로 아내와
유학을 떠나오고 졸업을 앞둔 해에 예쁜 딸아이
를 얻었다.이국에서 학비를 벌고 부족한 영어로
수업을 따라가느라 숨가빴던 시간을 끝내고 이제
막 직장을 구해 이민 생활로 접어들던 때였다.
아내가 모처럼 아이를 데리고 한국을 방문해 무려
3개월간 처가에서 지냈다.그래서 나는 뉴욕 빈집
에 남아 그 긴 시간을 혼자 지낸다.

하루는 주말에 집안을 청소하다가 침대 아래 깊이
떠밀려 들어간 어린 딸의 옷가지 하나를 발견한다.
그걸 손으로 들어 먼지를 털어내다가 나도 모르게
그만 코에 갖다대고 만다.녀석의 체취가 한가득
옷에서 느껴졌다. 바로 콧등이 찡해오면서 눈가가
촉촉해지기 시작했다.그 순간 오래전 영문 없이
할아버지의 한복을 얼굴에 묻고 우셔서 날 놀라게
했던 할머니의 모습과 마주한다. 할아버지에 대한
할머니의 사랑과 그 애틋했던 그리움이 나의 빈방
에 마치 비온 뒤의 들꽃처럼 활짝 피어나고 있었다.

-글/김감독 DP-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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