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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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의 힘

공직에 계셨던 아버지가 지방에서 새롭게 개인
사업을 하시겠다 선언하신 뒤 가족을 이끌고
서울을 떠나실 때,나는 혼자 남아 험난한 자취
생활을 시작한다.그때 중학교 2학년이었다.

혼자 남고 가장 힘들었던 시간은 아무래도 저녁
시간이다.학교를 파한 뒤 자취방에 와서 방문을
열면 늘 싸늘한 공기를 느꼈는데 그게 참 싫었다.
그래서 버릇처럼 들어서면서부터 라디오를 크게
켜고 부랴부랴 저녁 상을 차리며 나를 바쁘게
했다.그러나 역시 혼밥을 할 때면 말할 수 없는
외로움이 밥을 삼키는 목에 걸려 날 힘들게 했다.

그리고 자취생 첫해의 가을 소풍을 잊을 수 없다.
매번 어머님이 만들어 주신 김밥을 도시락에
담아 소풍을 준비했던 터라 무척 난감했다.볶음
밥을 만들어 도시락에 담아갈까 하다가 나는
그냥 가게에 가서 빵과 음료 그리고 과자 몇 개만
을 챙겨 배낭에 쓸어담았다.그날 밤은 이불을
덮는 순간까지 우울했다.매년 설레임 속에 잠들
었던 그 소풍 전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선생님들의 인솔을 받으며 여기저기 역사의 현장
을 답사하고 드디어 점심 시간이 됐다.나는 잠깐
주저했다.뻔뻔히 젓가락 하나만 들고 다니며
친구들이 싸온 김밥을 나눠먹자고 할까 아니면
어디 한적한 곳에 가서 그냥 혼자 빵을 꺼내먹
을까?뭐 이런 쓰잘대기 없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 순간에는 잠깐 어머니 말씀대로 가족과 함께
지방으로 내려가지 않은 내가 참 한심하다는
생각도 했다.가까운 친구들이 내 배낭을 잡아끌
면서 함께 먹자고 나를 끌어당기는 순간까지도
나는 마냥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

“야,이거 우리 엄마가..김밥 도시락 하나 더 쌌다.
너 자취생인 거 아시잖아.함께 나눠먹으라고 .”

다른 녀석이 또 도시락 하나를 내밀며 말한다.

“뭐야?…우리 엄마도 네 김밥 따로 싸주셨는데…”

잠시후 또 다른 녀석이 헐레벌떡 달려와 내게
도시락 하나를 더 내민다.

“아이구 늦어서 미안해…나도 도시락 꺼내 먹다가
어머니가 도시락 하나를 더 챙겨주신 걸 알았어.”

이날 내가 친구들에게서 받은 김밥 도시락은 모두
네 개였고 그날 나는 하나도 남기지 않고 그 도시락
모두를 깨끗하게 비워냈다.

그날 소풍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다시 이불을
덮고 자리에 누웠을 때 나는 친구들의 우정과
어머니들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그 어느 소풍
보다 즐겁고 행복했던 소풍의 기억을 갖게 되
었다고 생각했다.

그후로도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소풍
내내 두 세 개의 도시락을 받게 되었고 늘 그것들
을 깨끗이 비워냈다.어쩌면 나는 외롭고 힘든 그
자취생 시절을 그 김밥의 힘으로 잘 버티고 잘
이겨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그 시절 친구들
의 우정과 어머니들의 사랑에 깊이 감사한다.

글/김감독 DP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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