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보다 긴 기다림

imageDrawing By Dong Suk Kang (강동석)

생애보다 긴 기다림

-도종환-

밤사이에
산짐승 다녀간 발자국밖에 없는데
누가 오기라도 할 것처럼
문 앞에서 산길 있는 데까지
길을 내며 눈을 쓸었다

이제 다시는 당산나무를
넘어오는 발자국소리를
기다리지 말자 해 놓고도
못다 버린 게 있는 걸까

순간 순간 한 방울씩
녹아 내린 내 마음도
흘러 고이면
저 고드름
같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동안
종유석 같은 고드름이
댓돌 위에 떨어져 부서진다

기다리는 것
오지 않을 줄
늦가을 무렵부터 알았다

기다림이란
머리 위에 뜨는 별 같은 것인지 모른다

내가 내게 보내는
화살기도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의 모든 길이 눈에
덮여 지워지고
오직 내 발자국만이
길의 흔적인 눈 속에서
이제 발소리를 향해 열려 있던 귀를 닫는다

누군가를 기다리던 날들은
그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천천히 지워진 다음 날 새벽
아니 그 새벽도 잊혀진 먼 뒷날
창호지를 두드리는
새벽바람소리처럼 온다해도

내 기다림이 완성되는 날이
그 날쯤이라 해도
나는 섭섭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접은 것은
어쩌면 애타는 마음이나
조바심인지 모르겠으나
생애보다 더 긴 기다림도 있는 것이다

기다림을
생애보다 더 길게이 세상에
남겨 놓고 가야 하는
생도 있는 것이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http://www.loaloachristiannetwo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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