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il Painting by Edgar J. ( 전명덕)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
1997년 겨울, Y대 의과대학의 의뢰로
몽골에서 활동중인 동문 의사들의 의료봉사
관련 다큐멘터리 제작을 하게 되었다.
카메라와 오디오 장비를 챙겨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수시로 오지를 오가며 촬영을 진행했다.
혼자 촬영과 인터뷰 그리고 편집을 해내야
하는 일 이어서 정말 정신없이 뛰어다녔던
기억이 난다.
영하 15도의 혹한으로 카메라가 멈추고
가도 가도 끝없는 사막을 지나 5시간 정도
달리는 동안에도 차량이 몇차례
오작동을 일으켰다.
그렇게 도착한 어느 국립 요양원, 그곳엔 몽골
독립운동 영웅들의 후손이나 전쟁에 참전했다
부상당한 군인들이 요양중이었다.
그곳 사정은 정말 참담했다.
재정적 어려움으로 환자들 끼니를
제때 챙겨주는 일도 힘들어 보였고
서로 다른 병에 걸린 사람들은 환우의 약이
떨어지면 서로 자기가 먹던 약을 나눠먹으며
하루 하루를 버텨내고 있었다.
이들이 오늘 내일 기다리는 것은
그저 조금이라도 평안한 죽음이었다.
카메라를 들고 한참 그들의 병실을 찾아 다니다가
컴컴한 병원의 한 홀을 지나치게 됐다.
20 여명의 사람들이 흔들리는 네모난 불빛
앞에 모여 마네킨처럼 의자에 꼼짝않고
붙어있었다.
흑백 브라운관 T.V였는데 전혀 영상
수신이 되질 않아 소음에 흑점만 가득했다.
어둠 속에 지켜본 그 풍경은 기이했고
또 무섭기 까지 했다.
곁에 있는 안내인에게 왜 사람들이
수신도 안되는 T.V 앞에 저렇게
모여있냐 물었다. 그가 대답했다.
” 방송은 몇년전부터 끊겼지만 저 사람들 모두
언제가는 T.V가 다시 나올 거라고 믿는 거죠.
매일 저렇게 모여 있어요..그게 희망이
없는 저 사람들한테는 그나마 가장 현실적인
희망인 셈이죠”
“그럼 방송을 볼 수 있게 좀 도와주시죠.”
” 그건 어렵습니다.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던
송신소가 문을 닫았으니까요.”
카메라로 그들의 얼굴을 잡는데 표정 속에서
현자의 어떤 넉넉함과 따뜻한 미소가 보였다.
나는 갑자기 눈물이 흘러 뷰파인더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카메라가 흔들렸고 나도
오래도록 흔들렸다.
촛점이 나가기 시작해서
나는 카메라를 가슴에 안고 울음을 참아야 했다.
저들의 암담한 희망을 기록해야는데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우리가 기다리는 신호는 어떤 것인지…
우리가 잃었던 신호라면
놈은 다시 찾아오기나 하는건지.
믿고 의지할 송신소는 있기나 한 것인지.
나도 저들처럼 닿지 않는 신호를 기다리면서도
평안한 눈빛을 가질 수 있는지..
어쩜 저들은 이미 그 신호를 마음으로
느끼고 있어 그토록 평안한 얼굴을
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다큐멘터리 #몽골 #안테나 #촬영 #기억
-글/김감독 DP-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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