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때는 계획하지 않은 갑작스러운
임신으로 인해 나날이 배가 불러 올 즈음
하루라도 더 예쁠 때 사진을 남기고,
안정적인 생활을 하려면 결혼식이 시급했다..
시부모님의 뜻에 따라 교회에서 결혼식을
하기로 결정했는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교회이기 때문에 술은 안 된다는 시어머님과,
멀리서부터 오신 손님들에게 술 한 잔도
대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아빠의
양보 없는 첨예한 갈등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두 분의 입장 모두 이해가 됐을 뿐 더러,
이렇게 급하게 결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을
제공한 것이 우리였기 때문에
어느 쪽 편도 들 수 없었다.
결국 나는 결혼식은 교회에서,
피로연은 남편과 달리 바로 옆
건물에 있는 중국집에서 하게 되었다.
(식권을 들고 우리 측 손님들은 우왕좌왕)
요즘처럼 맛있는 음식 많이 나오는
뷔폐를 마다하고, 자장면이라니..
결혼식 피로연이 중국집이라니!…
(듣기에, 적은 인원으로 많은 코스요리를
만들어내느라 음식도 늦게 나오고
중국집은 아수라장이었다고 한다.)
‘인생에 단 한 번 뿐인 날 인데…’
그 이후, 나는 어쩌다가
결혼식이야기라도 나오면
피아니스트를 깜박하고 섭외하지 못해서
신부입장 중간부터 급하게
웨딩마치가 울렸다는 것,
결혼식 중간 중간 발이 너무 아파서
한 쪽씩 발씩 번갈아 신발을 벗고 있었다는 것,
신부가 조금도 울지 않고 웃기만 해서
친척들에게 한 마디씩 들었다는 말은
모두 신이 나서 이야기했지만,
단 하나 피로연을 중국집에서
했다는 말은 늘 쏙 빼놓고 말했다.
피로연 이야기에서 나는
늘 꿀 먹은 벙어리였다.
부끄러웠다는 말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그런데 4년 지나고 나니, 문득 드는 생각
뮤지컬, 춤, 마술, 유명한 연예인 초대 등,
수 많은 것들로 특별하고 잊혀지지
않을 결혼식을 하고 싶은 요즘.
그 모든 것을 다 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내 결혼식장에 온 사람들이라면
내 결혼식을 인상적으로
기억해주지 않을까
잊지 않고 그 날을 기억 해 준다면,
그걸로 되지 않을까.
특별한 결혼식이 되길 바라면서,
왜 평범하지 하지 못했던
것을 부끄러워했을까
어쨌든 그 날 가장 아름다웠던 것은
우리 둘이 확실하니까
내가 행복했던 것은 사실이니까.
그걸로 이제 됐다.
툭툭 털자.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사실,
시간을 되돌려 또 다시
그 때가 된 다고 하더라도
나는 같은 선택을 할 것 이다.
시간을 두고 좋은 예식장에서
하는 것보다 하루 빨리
그 와 함께 있는 것이 더
간절했기 때문에.
-글/날며-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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