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弔文) 

조문(弔文) 

뒷집
조성오
할아버지가

겨울에
돌아가셨다.

감나무
두 그루 딸린
빈집만 남겨두고
돌아가셨다

살아서

눈 어두운
동네 노인들
편지 읽어주고

먼저 떠난 이들
묏자리도 더러
봐주고

추석
가까워지면
동네 초입의 풀
환하게 베고

물꼬싸움 나면

양쪽 불러다
누가 잘했는지
잘못했는지

심판 봐주던

이 동네
길이었다,

할아버지는
슬프도록 야문
길이었다.

돌아가셨을 때
문상도 못한
나는

마루 끝에 앉아,

할아버지네
고추밭으로 올라가는
비탈,

오래 보고 있다.

지게 지고
하루에도 몇 번씩

할아버지가
오르내릴

풀들은
옆으로 슬쩍
비켜 앉아

지그재그로
길을 터주곤
했다

비탈에
납작하게
달라붙어 있던
그 길은

여름 내내

바지
걷어붙인
할아버지 정강이에
볼록하게
돋던

핏줄같이
파르스름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 비탈길을
힘겹게 밟고
올라가던

느린
발소리와

끙,하던
안간힘까지

돌아가시고
나자 그만 길도
돌아가시고
말았다.

풀들이
우북하게
수의를 해 입힌
길,

지금은
길이라고 할 수 없는
길 위로

조의를 표하듯
산그늘이 엎드려 절하는
저녁이다. 

-안도현-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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