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의 사람
아일랜드에서는
이런 점을
친다지
접시에 반지,
기도서, 물, 진흙,
동전을 담아
눈을 가린 술래에게
하나를 집게
하는데
반지를 집으면
곧 결혼하게
하고
기도서를 집으면
수도원에 가게
되고
물을 집으면
오래 살게
되고
진흙을 집으면
곧 죽게
되고
동전을 집으면
엄청난 부자가
된다지
내가 집어든 것은 진흙,
차갑고 축축하고
부드러운
질감이
손끝에
느껴질 때
그것이
죽음이
만져지는
순간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조금 놀라기도 하지
그러나
우리는 오래 전
진흙으로 빚어진
사람,
아침마다
세수하면서
그 감촉을
느끼곤 하지
물로 씻어낼 때마다
조금씩 닳아가는
진흙 마스크를
잘 마른
수건으로
닦아내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하루를 시작하지
아일랜드에
가지 않아도
반지, 기도서, 물, 진흙,
동전을 담은
접시는
식탁이나 선반 위에
늘 놓여 있지
내가 집어든 것은 진흙,
그것으로
빚을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있고
진흙이
마르는 동안
갈라지는 슬픔 또한
기다리고 있으니
나는 눈 어두운
진흙의 사람,
그러니 내 손이
진흙을 집어들더라도
부디 놀라지 말기를!
가렸던 눈을
다시 뜬다 해도
나는 역시
한 줌의 진흙을
집어들 것이니!
-나희덕-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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