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새인, 사두개인, 서기관, 셀롯인, 헤롯당

바리새인, 사두개인, 서기관, 셀롯인, 헤롯당

김광석
2011. 10. 7. 20:06

신약성경,
특히 사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를
읽다 보면 자주 눈에 띄는 이름들이 있다.

바리새인, 사두개인, 서기관, 셀롯인, 헤롯당.
그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예수님을 적대시했을 뿐만 아니라
성경의 뜻을 오해하거나 왜곡한 것이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회칠한 무덤”
“어리석은 맹인들” “외식하는 자”라고
통렬히 책망하셨다.

그러면 그들은 어떤 인물들이었으며,
어떻게 성경을 해석했는가?

◇바리새인

바리새’라는 말은
‘분리된 자, 구별된 자’라는 뜻의 히브리어에서 온 말로서
예수님 당시에는 6000여명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바리새파는 원래 하시딤(주전 4세기쯤)으로 불리는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며
공식적으로는 요한 힐카너스(주전 135∼105)때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그들은 모세 율법과 그것을 해석한 자신들의 전승이
동일한 권위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철저한 유일신관과 율법 준수를 강조했기 때문에
백성들로부터는 존경을 받았지만 인본주의적 율법 해석을
지적하는 예수님을 자신들의 종교적 기득권에 대한
적대 세력으로 알고 사사건건 트집을 잡았다.

◇사두개인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대제사장 사독(왕상 1:34, 삼하 15:24)에게서
시작되었고 예루살렘 멸망(주후 70년) 때까지 존속하였다.

숫자로는 바리새파보다 소수였지만 주로 교육을 받은 자들이었으며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었다.

사두개파(자연주의자)는 바리새파(초자연주의자)와는 달리
하나님의 예정과 부활, 천사와 마귀의 존재를 부인하고
개인의 자유만을 강조하였다.

특히 그들은 구약성경 중에서 모세 오경만을 인정하고
모든 구전을 부정했기 때문에 바리새인들과
자주 충돌하였다(행 23:8).

*사두개(Sudducees)라는 명칭은
히브리어 사딕(Saddig : 의로운)에서 비롯되었거나,
혹은 사두개파가 성전 제사장직과 관련되었기 때문에
솔로몬의 제사장이었던 사독(Zadok)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사두개인들은 숫자가 적었지만 부유한 지주계급이었고
당시 거의 모든 제사장들이 사두개인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들은 로마의 식민통치에 협조했던 무리로
이 때문에 유대동족들의 분노를 샀다.

이들은 왕정 시대와 유배시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안티오쿠스 4세와 하스모니안 왕가시대에는 세력이 약화되었다.
이들은 매우 엄격한 율법주의자들이었으며 성향은 보수적이었는데,
부활이나 영혼불멸, 천사론에 대해서 거부하는 입장을 보였다.

그들은 바리새파들의 가르침에 끼친 너무나 많은 페르시아의 영향과
앗시리아의 영향을 보았으며, 바리새파는 유대 전통의 반역자들이라고 느꼈다.

벨하우젠(Wellhausen)에 따르면
사두개파는 종교적인 집단이라기보다는
당시 지배계급이었던 성직자 계급 및 집권귀족계층과
밀착되어 있는 정당에 더 가까웠다고 평가 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사두개인들은 낡은 성직제도와 지주 귀족층을 대표하는
보수 종교단체라고 보면 되겠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정치적으로는 극히 현실 타협적이어서
이스라엘을 지배하는 로마에 충성을 맹세했다.

당시 사두개파는 유대인들의 무장독립항쟁을
막는데 힘을 쏟아붓게 되고, 이것이 열심당과 민중들의
증오의 표적이 되었다.

결국 AD 70년의 유대전쟁을 막지 못하고,
오히려 이 전쟁에서 그들 가운데 상당수가
동족들에게 죽임을 당함으로써 사두개 파는
괴멸되었고 그 이후로는 세력을 얻지 못했다

 

◇에센파

성경에는 언급되고 있지 않지만, 당시 기록에 의하면
유대의 여러 마을에 흩어져 있었고 중심지는 사해 서쪽에 있었다.
숫자는 4000명 정도,

주전 2세기부터 예루살렘 멸망 때까지 계속된 이 종파는
바리새파보다 더 철저히 율법을 지켰으며 외부에서 들어온 음식은
일절 먹지 않았다.

그들은 독신을 강조하였고, 손 씻는 결례와 세례,
기도 등 수도원적 생활을 했기 때문에 쿰란 종파 중 하나로서
세례 요한이나 예수님과도 어떤 연관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물론 비슷한 점은 있지만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결정적인 증거는 없다.

◇서기관

유대인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있었을 때
율법에 대한 깊은 연구가 시작되었고, 그 결과 서기관이라는
새로운 계급이 생겨나게 되었다.

율법을 옮겨 쓰거나 가르치는 역할을 했으며
때로는 랍비(선생, 율법교사)로 불렸다.

랍비는 예수님을 부를 때에도 사용되었고(37회),
사도나 교회 지도자들에게도 적용되었다.

그 밖에도 종교 종파는 아니었지만
헤롯 왕가를 지지하고 헬레니즘을 찬성하는
비교적 온건한 정치집단이었던 헤롯당,
율법과 유대민족을 광신적으로 옹호하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죽음이나 무력도 불사한
열심당(혹은 셀롯인) 등이 있었다.

그 외 ‘무리들’ ‘군중들’로 불린 대다수의 일반 백성들은
극심한 가난과 폭정에 시달려야만 했다.

앞서 유대 종파들에 속한 자들은
열심히 성경을 연구하기는 했지만 실천하지는 않았으며,
성경을 올바르게 가르쳐 준 예수님을 향해 돌을 던지려고 했다.

그들에게 걸림돌이 되었던 예수 그리스도,
우리에게는 구원과 영생의 모퉁이 돌이 되신다.

-고영민-
<백석문화대  총장>

Information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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