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학 개론
회귀해야 하는
지구상의
원점
어제
둥지를 풀었던
낯익은 곳이
따스하다
나의 낮은
그림자는
이방인처럼 노크는
하지 않으나
헛기침을 하며
신발을 돌려
반듯하게
놓고
수직의
작은 문을 열고
하루의 날개를
접는다
아내의
두 손은
하루를 견딘
헐거워진 깃털을
쓰다듬고
못을
지탱하는
벽을 향해 감사의
무늬를 새긴다
수평으로 누운
나의 귀는
허공에 떠도는
아내의 숨소리와
둥지에 부조된
하루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이
훌륭한
자질이라
곱씹는다
시간이
몇 굽이의
강을 흐르면
감각은
젤리처럼
물렁해지고
서로가
등을 내민다
세월을 구른
흙먼지가 등에
더덕더덕 묻어
있어도
손은
씻어 내리며
때를 때라고 말하지
않으며
상처를 보면
지레짐작을 할 뿐
언급을 하지
않는다
서로의 거리는
원의 중심점으로부터
반지름만큼
유지하며
느슨하지도
팽팽하지도 않은
온화함을 품고
있다
서로의 틈새는
올록볼록한 레고를
맞추듯 완성되고
어떤 취미
어떤 음식
어떤 TV 프로그램을
즐기는지
반사 신경은
늘 기억한다
시간에 맞추어
하루의 옷을
입을 때
각자의
색깔 무늬를
상징하는 등번호가
새겨진 옷을
선호하고
같은
운동장에서
경기를 하더라도
침범할 수 없는
포지션이
존재하며
포지션을
허무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
거부한다
서로가
손을 꼭 잡고
존중의 길을
걸으면
황혼이 지는
골목은
평온하고
감미로운 세레나데가
춤을 출 것이라
우리는 믿는다
-장병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