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밤
가난도
지나고 보면
즐거운 친구라고
배춧국 김 오르는
양은 그릇들이
날을 부딪치며 속삭인다
쌀과 채소가
내 안에 타올라
목숨이 되는 것을
나무의 무언(無言)으로는
전할 수 없어 시로 써보는
봄밤
어느 집 눈썹 여린 처녀가
삼십촉 전등 아래 이별이 긴소설을
읽는가보다
땅 위에는
내가 아는 이름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서까래 아래 제 이름
가꾸듯
제 아이를
다독여 잠재운다
여기에 우리는
한 生을 살러 왔다
누가 푸른 밤이면
오리나무 숲에서
비둘기를 울리는지
동정 다는 아낙의
바느질 소리에
비둘기 울음이 기워지는
봄밤
잊혀지지 않은 것들은
모두 슬픈 빛깔을 띠고 있다
숟가락으로 되질해온
생이 나이테 없어
이제 제 나이 헤는 것도
형벌인 세월
낫에 잘린 봄풀이
작년의 그루터기 위에
또 푸르게 돋는다
여기에 우리는 잠시
주소를 적어두려 왔다
어느 집인들 한 오리
근심 없는 집이 있으랴
군불 때는 연기들은
한 가정의 고통을
태우며 타오르고
근심이 쌓여 추녀가
낮아지는 집들
여기에 우리는
한줌의 삶을
기탁하러 왔다
글/이 기 철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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