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  
(베드로 전서 一장 十三-二十五절)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벧전 一․十九)

청교도의 유명한 문학자 존 밀턴이
일찍이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인간의 위대성은 두 가지 사실에 나타났으니

첫째는
그 영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음이요,

둘째는
그 영의 구속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피가
흘려진 사실이다.』

참으로 그러합니다.
우리가 구속을 받은 것은 세상에 귀하다는
금이나 은으로 된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보혈로 된 것입니다.

피는 귀합니다. 피는 보배롭습니다.
피는 생명을 의미합니다. 고로 옛날부터
피를 먹는 것을 금하였습니다.

창세기 九장 三-四절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무릇 산 동물은 너희 식물이 될지라,
채소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채 먹지 말지니라.』

짐승의 피도 귀하거든
인간의 피야 얼마나 더 귀하겠습니까?
인간의 피가 귀할진대 하물며 그리스도의 피가
얼마나 더 귀할 것입니까?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피를
하나님의 피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二十장 二十八절에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가장 귀합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가장 보배롭습니다.

이 사순절에 그리스도의 피를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보혈과 우리 믿는 자의 관계를
특별히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가 죄에서 구속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 앞에서 죄인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옛날엔 염소나 송아지를 잡아
그 피를 속죄제로 대신 드려서
죄 사함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한 대로
염소와 송아지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전을 이루 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고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 九장 十二절에
기록하였습니다.

이렇게 그리스도는 우리가 죽을 것을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그 피로 우리 죄를
속하여 주신 것입니다.

전에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오던 전날 밤에
사람이나 짐승이나 처음 난 것이 죽는
재앙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그 날 밤에 이 재앙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미리 양을 잡아서
그 피를 문설주와 그 인방(引枋)에
발랐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사람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우리도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죄에서 구속을 입은 것입니다.

예수 님께서 잡히시기 전날 밤에
떡을 가지 사 축사하시고 떼어주시며
하시는 말씀이 받아먹어라

이것은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니라 고
말씀하신 후에 계속하여 잔을 잡으시고
축사하신 후에 주시며 하시는 말씀이
너희는 다 이것을 받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가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어떤 농가에서 닭을 칩니다.
마침 닭들이 마당에 나가서 놉니다.
그 때에 한 독수리가 내려와서 닭을 움킵니다.

그러니까 농부가 달려나옵니다.
그러자 독수리는 날아 올라갔는데
내려와서 움켜쥐었던 암탉 한 마리는
쓰러졌습니다.

최후의 피를 흘리며 쓰러졌습니다.
그런데 그 암탉을 들고 보니
그 날개 아래 병아리가 몇 마리 있습니다.

병아리의 머리 위에는 피가 묻었습니다.
그러나 피는 묻었지만 병아리는
한 마리도 죽지 않고 살았다고 합니다.

암탉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병아리는 살았습니다.

암탉이 병아리를 모으듯이 모은다고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보혈을 흘리심으로

우리가 죄에서 사함을 받고

살게 되었습니다.

둘째로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를 깨끗하게 하십니다.

사도 요한 은 요한一서 一장 七절 하반 절에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이 지금 말씀 드린 대로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얻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둘째는 그리스도의 보혈은
계속해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이것을 영어로는

샌디피케이션(sanctification),

성화의 교리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을 때
베드로의 차례가 오자 그는 너무 황송해서
『내 발은 절대로 못 씻습니다.』하고 거절을 했습니다.

그 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받을 씻기지 아니하면
너와 상관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그의 보혈을 통하여

우리를 씻기시는

깊은 뜻을 의미하신 것입니다.

옛날 모세의 율법에
염소와 송아지의 피를 뿌려서
더럽혀진 육체를 깨끗케 하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사실 인간의 육체 속은
피가 순환하면서 깨끗케 만듭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의 영을 깨끗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九장 十四절에는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 양심을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양심이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깨끗해집니다.

요한 계시록 七장을 읽어보면
하나님의 큰 보좌를 중심해서
수없이 많은 사람이 몸에는 흰옷을 입고
손에는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선 모습이 보입니다.

이 때에 요한 은 물어 보았습니다.
『이들이 다 어디서 왔습니까?』천사가 대답합니다.

『이들은 다 큰 환난 가운데서 나온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마틴 루터가 한 벗은 꿈을 꾸는데,
일생에 자기가 한 모든 일이 적힌 책이 있는데
그 옆에 바로 악한 마귀가 서서 한 장  한 장 뒤적이며
『네가 아무 때, 이런 죄를 지었지.
아무 때는 이러이러한 죄를 지었지 하고
꼭꼭 지적을 합니다.

마틴 루터는 얼마나 겁이 나는 지요.』
그 때에 마틴 루터는 요한 一서 一장 七절이
생각났다고 합니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케 하실 것이요』하고

이 성경 구절을 외칠 때는

마귀는 잠잠히 달아났다고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보혈로 말미암아

우리가 깨끗함을 입을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가 승리를 거둡니다.

요한 계시록 十二장 十一절에
『어린양의 피로 승리를 얻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피를 흘리시며 죽었습니다.
얼른 보면 실패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죽음으로 승리를 한 것입니다.
피로써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악의 세력을 멸하였습니다.

六․二五때에 붉은 적도들을 물리치고
남한에 자유를 확보한 것은 문자 그대로
피로써 얻은 것입니다.

한국의 청년들이 피를 흘렸습니다.
UN의 청년들이 피를 흘렸습니다.
피로써 승리를 하였습니다.

우리 육체의 피부가 상하게 되면
많은 세균이 침입합니다. 그러나 혈액 속에는
백혈구가 있어서 싸워서 승리함으로
생명이 계속 유지되는 것입니다.
피로 승리를 거둠으로써 우리가 삽니다.

창세기 四장을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동생을 죽인 가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무엇을 하였느니,
네 아우의 피 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였느니라.』
피의 호소하는 소리가 큽니다.
하늘에까지 상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피의 호소를 들으시고
반드시 응답해 주실 때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종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믿습니다.
남북이 통일 될 줄을 믿고,

통일이 될 때에는 기독교 나라가
될 것을 믿습니다.

왜냐 하면 북한과 이 남한에
많은 순교자의 피가 흐른 까닭입니다.

저는 이 앞으로도 영락교회가 큰 일을 하고
큰 축복을 받을 줄 믿습니다.

왜냐하면 이 뜰에
순교자 김 응낙 장로의 피가 흐른
까닭입니다.

피의 호소력이 강합니다.
피는 반드시 승리합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반드시 승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 님께서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신령한 의미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를
마셔야 합니다.

피는 곧 생명입니다.

예수의 생명이

우리 속에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함으로써 만

피를 마실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의 피를

영적으로 마셨다고 할 것이면

우리의 생활은 거룩해야 합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 하라.

생각, 말, 행동이

거룩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를 받았으면
우리도 우리의 피를 남에게 줄줄 알아야 합니다.

문자 그대로 피를 주어야 하겠습니다.
이 세상에는 피를 요구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수술할 때 수혈을 해야 합니다.
수술 안 해도 아주 약할 때는 피를 주어야 합니다.

내가 들으니 우리 영락교회 청년들이
피를 바치는 헌혈 운동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감사히 생각했습니다.

우리 장로교 여자 기독교 대학의 학생들도
지난가을에 이미 피를 바쳤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감격했습니다.

사실 미국 같은 나라에는
자진해서 피를 바치는 사람이 많아서
혈액 은행에는 피가 가득하고

미국 내에서 쓰고도 남아서
세계 각국으로 거저 보낸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은 이렇게 피를 바치는 사람이 없어서
부득이 피를 살수밖에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파는 피를 살만큼
한국의 정도가 낮습니다.

우리 기독 청년들이
솔선해서 내 피를 거저 약한 사람을 위해서
바치는 헌혈 운동을 대대적으로 해서,

우리 영락교회뿐만이 아니고
온 한국의 기독 청년들이 피를 자진해 바쳐서
우리 나라에도 피가 혈액 은행에 넉넉해서
쓰고도 남고 다른 나라에까지 보낼 수 있는
일이 있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一九七ㅇ년을 당해서,
영락교회의 창립 二十五 주년을 당해서,
특히 이 사순절을 당해서
내가 간절히 바라는 것은

우리 가정에서
내 아이들만 기르지 말고
고아들까지도 받아서
기르는 이런 운동,

내 피로 나만 살지 말고,
좀 바쳐서 남을 살리는
헌혈 운동이 일어나서
온 우리 한국에 퍼질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또 정신적으로도
피를 주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일찍이 말했습니다.

『나는 매일 죽노라』고
매일 순교자 노릇을 해야 합니다.

매일 피를 흘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민족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내 정력을 바치고

내 시간을 바쳐서

내 물질도 희생하는,

피를 주는,
희생이 필요합니다.

이 생활을
우리가 해야만 할 것입니다.

정신적으로 피를 주는 생활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내 주의 보혈은

정하고 정하다

내 죄를 정케 하신 주

날 오라 하신다.

이 사순절에 우리가 다 주께 나와서

내가 먼저 깨끗함을 받고

내가 먼저 살아서

승리적 생활을 하면서

나의 피를 다른 사람에게 주고

정신적으로도 피를 주면서

그리스도를 따라 가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올시다.

– 한경직 목사 설교전집 9권 中에서
(一九七0년 二월 二十二일)

Kyung-Chik Han (1902–2000)
was a Korean pastor and church planter
and the recipient of the 1992 Templeton Prize
for Progress in Religion.

설교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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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are The Branches

You are The Branches

“I
am
the vine;

you
are
the branches.

If
a man
remains in me

and

I
in him,

he will bear
much fruit;

apart
from me

you can do
nothing.

John 15;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한복음 15: 5

Holy BIBLE
New International Version (NIV)
성경/개역개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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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창가사이로
촉촉한 얼굴을
내비치는 햇살같이


흘러내린 머리를
쓸어 올려주며
이마에 입맞춤하는


이른
아침같은
사람이

당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부드러운
모카 향기 가득한
커피 잔에

살포시 녹아가는
설탕같이 부드러운
미소로

하루시작을
풍요롭게 해주는
사람이

당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분분히 흩어지는
벗꽃들 사이로

내 귓가를
간지럽히며
스쳐가는

봄바람같이
마음 가득 설레이는
자취로

나를
안아주는
사람이


당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메마른 포도밭에
떨어지는 봄비 같은
간절함으로


내 기도 속에
떨구어지는 눈물 속에
숨겨진 사랑이


다른 사람이 아닌
당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내 삶 속에서
영원히 사랑으로
남을..

어제와 오늘..

아니
내가 알 수 없는
내일까지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당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정하-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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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만나야 할 좋은 사람

인생에서 만나야 할 좋은 사람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과
만나라

그 사람은
나를 치유해 주는
사람이다

언제나
밝게 웃는 사람과
만나라

그 사람은
멀리 있는 복도
찾아오게 하는
사람이다

이메일,
편지, 카톡, 전화로
인사를 보내는 사람과
만나라

그 사람은
항상 당신을
생각하고 있다

내일을
이야기하는 사람과
만나라

그 사람은
반드시 성공한다

확신에 찬
말을 하는 사람과
만나라

그 사람은
기준 잡힌 인생을
사는 사람이다.

살아 있음에
감사하는 사람과
만나라

그 사람은
주위를 항상
따뜻하게 해 주는
사람이다

아무리
작은 일도
소중히 여기는 사람과
만나라

그 사람은
작은 행복이
자주 일어나는
사람이다

생각만 해도
대단하다고 느끼는
사람과
만나라

그 사람은
시대를 이끌어 갈
사람이다

독서와  사색을
즐기는 사람과
만나라

그 사람에게는
항상 배울 것이 많은
사람이다

부지런히
일을 하는 사람과
만나라

그 사람은
삶이 항상
풍요롭다

<좋은 사람에게만 좋은 사람이면 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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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econd Death

The Second Death

But

the
cowardly,

the
unbelieving,

the vile,

the
murderers,

the sexually
immoral,

those
who practice
magic arts,

the
idolaters

and

all liars

they
will be
consigned

to the fiery lake
of burning
sulfur.

This is
the second
death.”

Revelation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
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요한계시록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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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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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당신 만나러 가느라
서둘렀던 적
있습니다.

마음이 먼저
약속 장소에
나가

도착하지 않은
당신을

기다린 적
있습니다.

멀리서 온
편지 뜯듯
손가락 떨리고

걸어오는
사람들이
다 당신처럼 보여

여기에요,
여기에요,
손짓한 적 있습니다.

차츰
어둠이
어깨 위로
쌓였지만

오리라
믿었던 당신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입니다.

어차피 삶 또한
그런 것입니다.

믿었던 사람이
오지 않듯

인생은
지킬 수 없는
약속 같을 뿐

사랑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실망 위로
또 다른 실망이
겹쳐지며

체념을
배웁니다.

잦은
실망과
때늦은 후회,

부서진
사랑 때문에 겪는
아픔 또한 아득해질
무렵

비로소
깨닫습니다.

왜 기다렸던
사람이 오지
않았는지,

갈망하면서도
왜 아무것도
이루어지는 것이
없는지,

사랑은
기다림만큼
더디 오는 법

다시 나는
당신을 만나기 위해
나갑니다.

-김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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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기업이 아니다

교회는 기업이 아니다

 

By 김형태 | 2019년 1월 30일

한국교회, 대형화가 되면서 발생하는
수많은 문제들 중심에 “돈”이 자리잡고 있다.

사람이 많이 모이니 일종의 사람의 머릿수에 의한
하나의 “힘”을 자랑하기도 한다.

교회의 건물은 커지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재산이 늘어가면서 마치 세상의 기업처럼
기업화가 되어가기도 한다.

교회가 세상의 기준으로
“많은 것”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기업(企業)”이란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영리(營利)를 얻기 위하여 재화나 용역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조직체.

출자(出資) 형태에 따라 사기업(私企業),
공기업(公企業), 공사 합동 기업(公私合同企業)으로
나눈다.”라고 사전에 나와 있다(출처 : 네이버 사전).

기업의 사전적 뜻은
“교회”의 정의(예수 그리스도를 주[主]로
고백하고 따르는 신자들의 공동체)와는
큰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교회는 기업이 아니다.”라든가,
“기업화되어 가는 교회” 등의 제목의 글들을
여기저기에서 찾아볼 수 있는가?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고
세상적 권력과 돈의 원리를 따르기 때문이다.

교회가 사람 숫자가 많아지고
재정이 넉넉해지면서 건물을 짓고, 땅을 사고,
목회자의 봉급을 올린다.

목회자도 오직 담임목사의 봉급만 오른다.

일종의 기업의 CEO와 같은 대우를 한다.

담임목사의 사택이 바뀌고, 자동차가 바뀐다.

말 그대로 기업의 CEO가 되고 만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죽을 것을 예고하는데,
제자 두 명은 세상의 가치기준으로
한자리씩을 차지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청탁을 하는 모습이 성경에 기록 되어 있다.
(마 20:21, 막 10:37).

교회가 십자가의 피흘리심과
그 은혜를 잊고 있기 때문에 세상적 기준으로
부와 명성을 쌓아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대형교회의 담임목사는

가관이다.

그들은 이미

대기업의 CEO처럼 행동하고,

삶을 누리고 있다.

교회 안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같은 모습으로 살아간다.

사회의 기관장 모임에도 나간다.
표를 의식한 정치인들은 그들에게
머리를 숙인다.

더 이상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헌신과 사랑과는
거리가 멀다.

최근 대형교회를 일군 주역인 세대들이
은퇴를 하면서 세대교체가 “세습”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단순히 혈연관계의 세습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은퇴 이후에도 돈과 권력을 누릴 수 있는

그런 정치적 세습까지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더 안타까운 모습은
이런 모습을 교회를 이루고 있는
일반성도들의 태도이다.

이런 모습을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대형교회의 장점을 누리며,
이를 이용하는 담임목사의 죄악을 방조하고
오히려 돕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교회 수준이면 담임목사가
그 정도 돈은 써도 된다.”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을 듣고 있노라면 역겹다.

나는 간혹 그들에게 이야기한다.
“당신이 말하는 ‘수준’이라는 것이 무엇이요?”라고 말이다.

참으로 어렵게 헌금하는 사람들의
작은 헌금이 모아져서 큰 예산을 이루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다.

그런데 그렇게 모아진 헌금이 세상적 기준으로
큰 힘인양 생각하는 성도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것을 도대체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를
고민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문제”를 벗어나
분명히 “죄악”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는 분열되고 있다.
세상 기업도 세습을 하기 때문에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는 세상에서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세습은
참으로 교회의 본질 자체를 흔들고 있다.

또한, 이런 한국의 대형교회의 목사들의 행태는,

참으로 사회의 어두운 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수많은 목회자들의 헌신과 기도를

통채로 뒤흔드는 범죄이다.

수많은 목회자들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복음을 전하고자 힘쓰고 애쓰고 있는데,

세상의 부와 권력을 누리는 일부 목회자들의

추악한 모습이 그들의 헌신과 노력을 도매급으로

취급받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운 것이다.

한국교회는 다시금
“복음의 본질”로 되돌아 가야한다.

재정이 좋아지면,

자신들의 배를 불리우는데

사용하면 안된다.

그 재정의 넉넉함이
사회의 필요한 곳에 흘러가야 한다.

그렇게 흘려보내지 않으면

한국교회는 미래가 없다고

단언한다.

교회 내 어려운 분들을 포함하여
사회적 약자를 향해 흘러가야 할 것들이다.

교회가 기업이 아니라는 말은,
목회자는 기업인이 아니라는 뜻이다.

하나님께 드린 헌금을 가지고
CEO 흉내를 내고 있는 수많은 목회자들은
이제 “부와 명예를 누리려는 짓”을 그만 두길 소망한다.

당신네들만 망하면 좋은데,
한국교회를 망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Article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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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turn To Me With All Your Heart

Return To Me With All Your Heart

Before them
the earth
shakes,

the heavens
tremble

the sun
and moon are
darkened,

and
the stars
no longer
shine.

The Lord
thunders
at the head of
his army;

his forces are
beyond
number,

and
mighty is
the army

that
obeys
his command.

The day of
the Lord is
great;

it is
dreadful.
Who can
endure
it?

“Even now,”
declares
the Lord,

“return to me
with all your
heart,

with fasting
and weeping
and mourning.”

Joel 2:10-12

그 앞에서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떨며
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빛을
거두도다

여호와께서
그의 군대 앞에서
소리를 지르시고

그의 진영은
심히 크고

그의 명령을
행하는 자는
강하니

여호와의 날이
크고 심히
두렵도다

당할 자가
누구이랴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요엘 2:10-12

Holy BIBLE
New International Version (NIV)
성경/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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