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stain, Carry, Rescue


Sustain, Carry, Rescue

Bel
bows down,
Nebo stoops
low;

their
idols are
borne by beasts
of burden.

The images
that are carried about
are burdensome,
a burden for
the weary.

They stoop
and bow down
together;

unable to
rescue the burden,
they themselves
go off into
captivity.

“Listen to me,
O house of Jacob,

all you
who remain of
the house of
Israel,

you whom
I have upheld since
you were conceived,
and have carried since
your birth.

Even to your
old age and gray hairs
I am he, I am he who will
sustain you.

I have made you
and I will carry you;
I will sustain you and
I will rescue you.

Isaiah 46: 1-4

벨은 엎드러졌고
느보는 구부러졌도다

그들의 우상들은
짐승과 가축에게 실리웠으니
너희가 떠메고 다니던 그것은
피곤한 짐승의 무거운
짐이 되었도다

그들은 구부러졌고
그들은 일제히 엎드러졌으므로
그 짐을 구하여 내지 못하고
자기도 잡혀 갔느니라

야곱 집이여
이스라엘 집의 남은
모든 자여

나를 들을찌어다

배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품기운
너희여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안을 것이요
품을 것이요
구하여 내리라

이사야 46: 1-4

Holy BIBLE
New International Version (NIV)
성경/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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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 비



사월 비

보소,

보이소로 오시는
사월 가랑비

헤어진
여자 같은
사월 가랑비

잔치도 끝나고
술도 깨고

피도 삭고
꿈도 걷히고

주머니마저
텅텅빈 이른
새벽에

가신 이들 보이는
건널목 저편

사랑한다, 한다
횡설수설하면서

어디까지 따라오는
사월 가랑비

-이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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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나 – ‘손에 손잡고’ (1988) | Koreana- ‘Hand In Hand’ (1988 서울올림픽, Seoul 1988 Olympic theme song)

1)

Koreana 코리아나 –
‘Hand In Hand’ 손에 손잡고’ (1988)
 Koreana- ‘Hand In Hand’
(Seoul 1988 Olympic theme song)

Hand In Hand

.
.
.

Hand in hand we stand
All across the land
We can make this world
A better place

Hand in hand

we can
Start to understand
Breaking down the walls
that come between us
.
.
.


2)

Kim, Yuna
Skating
with Koreana 코리아나 –
‘Hand In Hand’ 손에 손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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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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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엽서


4월 엽서

막차가
끝나기 전에

돌아가려
합니다

그곳에는
하마 분분한 낙화
끝나고

지는
꽃잎 꽃잎
사이

착하고 여린
새 잎들 눈뜨고
있겠지요

바다가
보이는 교정
4월 나무에 기대어

낮은
휘파람 불며
그리움의 시편들을
날려 보내던

추억의 그림자가
그곳에 남아
있습니다

작은 바람
한 줌에도 온몸으로
대답하던

새 잎들처럼
나는 참으로 푸르게
시의 길을 걸어

그대 마을로
가고 싶었습니다

날이 저물면
바다로 향해 난 길
걸어

돌아가던
옛집 진해에는

따뜻한 저녁 불빛
돋아나고

옛친구들은
잘 익은 술내음으로
남아있겠지요

4월입니다.

막차가
끝나기 전에
길이 끝나기 전에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정일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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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were The Fewest

You were The Fewest

For
you are
a people holy
to the LORD
your God.

The
LORD
your God has
chosen you

 out of all
the peoples
on the face of
the earth

to be
his people,
his treasured
possession.

The LORD
did not set
his affection
on you

and
choose you
because you were
more numerous
than other
peoples,

for
you were
*the fewest
of all peoples.

Deuteronomy 7: 6-7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신명기 7: 6-7

Holy BIBLE
New International Version (NIV)
성경/개역개정

***

참고

*이스라엘 Israel:
“You were The Fewest”,
*one of the least of these
brothers of mine”
(Mathew 25: 34-3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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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 YUKSA (이육사)

YI YUKSA (이육사)

Yi Yuksa (이육사)

Yi Won-rok (May 18, 1904 – January 16, 1944), better known by his pen name Yi Yuksa(264: his prison number) was a Korean poet and independence activist. As one of Korea’s most famous poets, he and his works symbolize the spirit of the Korean anti-Japanese resistance of the 1930s and 1940s.

Yi was born in Dosan-myeon, Andong on May 18, 1904. Yi was a descendant of the scholar Yi Hwang, better known as Toegye. Yi completed his basic education in Andong, graduating at the age of 15 in 1919.[1] In 1920, at age 17, he moved with his family to Daegu and married. Yi became a teacher at the academy at which he studied, but in 1924 left for Japan to study in University.
In 1925 Yi returned to Daegu and along with his brothers, joined the Uiyoldan, an association formed in response to Japanese repression of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The Uiyoldan was associated with acts of sabotage and assassination. Yi moved to Beijing in 1925/26, likely because of this association, and studied at Sun Yat-sen University in Guangzhou. Yi returned to Korea in 1927. When members of the Uiyoldan bombed the Daegu branch of the Choseon Bank, Yi was among the arrested and spent 18 months in prison.
In 1929 Yi began to work as a journalist, and in 1930 he published his first poem “Horse,” in the Choseon Ilbo. From 1931 to 1933 he studied in China, but continued to maintain contacts with the Korean resistance. In 1935 he began to concentrate on his writing, publishing both poems and critical essays. Accounts have Yi arrested a total of 17 times.

In April 1943 he went to Beijing and apparently began smuggling weapons into Korea. In 1943 Yi returned to Korea on the first anniversary of the death of his mother. He was arrested in Korea and transferred to Beijing, where he died in prison on January 16, 1944, at the age of 39. Controversy lingered after Yi’s death and there are allegations from eyewitnesses in the prison that suggest Yi was subject to live experimentation – which was common practice in Japanese prisons and comfort women stations, during the period. It is reported Yi’s bloodstream was injected with saline solution in the prison hospital – which subsequently killed him. “He was cremated and buried in Miari, Seoul.
In 1960, Yi’s remains were reinterred near his birthplace and in 1968 a memorial stone was erected in Andong. Just outside Andong there is the Yi Yuksa Museum, dedicated to the memory of his literature and freedom-fighting.

 

광야(曠野)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山脈)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참아
그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季節)이
피여선 지고

큰 강(江)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나리고
매화향기(梅花香氣)
홀로 아득하니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曠野)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시詩/이육사 시인-
(1904~1944)

이육사 李陸史

1904년 5월 18일
(1904년 음력 4월 4일) –
1944년 1월 16일)는
대한제국의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이다.

경상북도 안동군
도산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진보(眞寶)이며,
퇴계 이황의 14대손이다.

한학을 수학하다가
도산공립보통학교에 진학하여
신학문을 배웠다.

1925년
20대 초반에
가족이 대구로 이사한 뒤

형제들과 함께
의열단에 가입하였고,
1927년 10월 18일 일어난
장진홍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큰형인 원기, 맏동생 원일과
함께 처음 투옥되었다.

이원록의 필명은
여러가지가 있고, 호에 대한
몇가지 이야기가 있어 기재한다.

하나는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어 받은 수인 번호
‘264’의 음을 딴 ‘二六四’에서
나왔다고 전해지며,’

李活’과 ‘戮史’, ‘肉瀉’를 거쳐
‘陸史’로 고쳤다고 전해진다.

1929년 이육사가
대구형무소에서 출옥한 후
요양을 위해 집안어른인 이영우의
집이 있는 포항으로 가서
머문 적이 있었는데,

이육사가 어느 날
이영우에게 “저는 “戮史”란 필명을
가지려고 하는데 어떻습니까?”라고 물었다.
이 말은 ‘역사를 찢어 죽이겠다’
라는 의미였다.

당시 역사가
일제 역사이니까 일제 역사를
찢어 죽이겠다, 즉 일본을
패망시키겠다는
의미였다.

이에
이영우는 “표현이
혁명적인 의미를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니, 같은 의미를
가지면서도 온건한 ‘陸史를
쓰라’고 권고하였고,

이를
받아들여 ‘陸史’로
바꿔 썼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肉瀉’라는 이름은
고기 먹고 설사한다는 뜻으로
당시 일제 강점 상황을 비아냥거리는
의미로,

1932년
조선일보 대구지국
기자로 근무했을 적
대구 약령시에 대한 기사를
네 차례 연재할 때
사용되었다.

이육사의 필명이나
호를 순서대로 정리하면
李活(1926-1939), 大邱二六四(1930),
戮史(1930), 肉瀉(1932),
陸史(1932-1944)와 같고
이원록이 ‘陸史’로
불리게 된
연유이다.

문단 등단
시기는 〈말〉을 발표한
1930년이며, 언론인으로 일하면서
중국과 대구, 경성부를 오가면서
항일 운동을 하고 시인부락,
자오선 동인으로
작품도 발표했다.

그동안
대구 격문 사건 등으로
수차례 체포, 구금되었다.

1925년
가을부터 2~3학기 동안
베이징에 있던 공립 중궈 대학
(中國大學, 베이징 대학이 아님)에 들어가
문과 수업 등을 청강하기도 하였다.

중화민국
국민당 군사위원회에서
난징에 창설해 김원봉이 조선인 항일
군관 훈련반(제6대대) 대장에 있던
군사학교에 1932년 9월 입학하여
보병 육성과 특수 부대원 훈련을 받고
이듬해 4월에 졸업하였다.

졸업 후
상하이를 경유하여
귀국하였는데, 1933년 6월 상하이에서
들렀던 한 중국 국민당 인사의 장례식 자리에서
루쉰을 우연히 한 번 보게 되었다는
연구가 나오기도 했다.

이육사는
루쉰의 1921년작
단편 소설 《고향》을
식민지 조선에 번역해
내놓기도 했다.

1943년
어머니와 큰형의
소상을 위해 잠시 귀국했다가
체포되어 베이핑(베이징)으로
압송되었고,

다음해인
1944년 1월 16일
베이징 주재 일본 총영사관
감옥에서 3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From: 백과사전

 

 

 

 

 

▲ 1934년 6월 20일
서대문형무소 수감 당시
신원카드. [사진출처-이육사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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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reats Against Their Land

Threats Against Their Land

“I have heard
the insults of
Moab

  and
the taunts of
the Ammonites,

who
insulted
my people

 and

made threats
against their
land.

Therefore,
as surely as
I live,”

  declares

the
Lord
Almighty,

  the God of
Israel,

“surely
Moab will become
like Sodom,

  the
Ammonites
like Gomorrah—


a place of
weeds and
salt pits,

 a wasteland
forever.


The remnant
of my people will
plunder
them;

   the survivors
of my nation will
inherit their
land.”

This is
what they will get
in return for their
pride,

 for
insulting and
mocking

    the people of
the Lord
Almighty.

The Lord
will be awesome
to them

 when
he destroys
all the gods of
the earth.

Distant nations
will bow down
to him,

 all of them
in their own
lands.

Zephaniah 2:8-11

내가

모압의
훼방과

암몬 자손의
후욕을 들었나니

그들이
내 백성을
훼방하고

스스로 커서
그 경계를 침범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장차
모압은
소돔 같으며

암몬 자손은
고모라 같을
것이라

찔레가 나며
소금 구덩이가
되어

영원히
황무하리니

나의
끼친 백성이
그들을 노략하며

나의
남은 국민이
그것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라

그들이
이런 일을
당할 것은

교만하여
스스로 커서

만군의 여호와의
백성을

훼방함이니라

스바냐 2: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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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진달래

나는
한 방울 눈물

그대 몰래
쏟아버린 눈물 중의
가장 진홍빛
슬픔

땅속
깊이 깊이
스몄다가

사월에 다시
일어섰네

나는
누구신가
버린 피 한 점

이 강물 저 강물
바닥에 누워

바람에
사철 씻기고
씻기다

그 옛적
하늘 냄새
햇빛 냄새에

눈떴네

달래 달래
진달래

온 산천에
활짝 진달래

-강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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